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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며칠 전 한미 정상회담차 출국 직전 한 라디오 연설에서 “정부가 부자를 위한 정책을 쓴다는 비판도 있지만 사실 감세의 70% 혜택이 서민과 중소기업에 돌아가고 있다”고 발언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한 마디로 감세정책의 효과를 정반대로 호도하는 대국민 기만일 뿐이다. 사실 지난해 정부가 감세정책을 추진할 당시부터 이런 거짓말은 시작됐다. 당시 정부가 발표한 감세안 보도자료를 보면 주요 개편내용의 첫 번째 항목으로 ‘중저소득층 민생안정 및 소비기반 확충 지원’을 내세우고 있다. 감세 혜택의 상당 부분이 중저소득층에 돌아갈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말 뻔뻔스러운 거짓말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얘기하는 감세 혜택의 70%가 서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근로소득세만 놓고 보면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근로소득세의 경우 과세표준 4600만원 이상에 돌아가는 혜택이 4400억원, 그 이하가 1조800억원 정도로 중저소득층에 돌아가는 혜택이 70%를 조금 넘는다. 문제는 정부 감세정책 가운데 중저소득층에 돌아가는 혜택이 유일하게 많은 세목이라는 점이다.
전체 감세정책의 혜택이 귀속되는 효과를 따져보면 상황은 전혀 딴판이다. 이종석 회계사(진보신당 정책연구위원)가 분석한 감세 효과를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2009년 양도소득세 세금감면 추정액 1.5조원과 종부세 세금감면 추정액 2.3조원은 거의 전액 자산 부유층에 혜택이 돌아간다. 법인세 감면 추정액 5.7조원 가운데 4조원 이상이 매출액 1000억원 이상 대기업에 돌아간다. 중소기업에 돌아가는 혜택은 1.7조원이다. 사업소득세의 경우 과세표준 4600만원(실제 소득 7000만원 수준) 이상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5500억원, 그 이하에 돌아가는 혜택이 3300억원 정도다. 전체적으로 보면 약 75%가 부유층과 대기업에 세금 감면 혜택이 돌아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것과 정반대인 것이다.
결국 정부가 내세우는 중저소득층을 위한 감세는 대국민 사기극일 뿐이다. 도대체 정부가 말하는 ‘중저소득층’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이 ‘서울 강남의 종부세 대상자는 대부분 중산층이다’라고 말한 식으로 중저소득층의 개념이 바뀌어 자산이나 소득 상위 10% 안에 들어야 중저소득층이란 말인가. 최소한의 염치도 없는 부유층 감세안을 호도하기 위한 포장술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흉내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부시 행정부가 추진한 감세안의 감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미국 의회예산처(CBO)의 2004년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20%가 감세혜택의 60%를 챙겼다. 또 최상위 1% 가구가 중간 소득계층보다 약 40배에 해당하는 혜택을 입었다.
이런 식의 현상이 한국이라고 안 나타날까. 이미 그 효과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전례가 있다. 2004년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의 인하 효과에 대해 국회 예산정책처가 2005년 추정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말하는 중저소득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1~6분위 계층에서는 3885억원(6분위)에서 7799억원(1분위)의 후생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고소득층인 7분위(788억원)부터 10분위(1조4454억원)까지는 후생이 증가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하위층의 후생이 줄지는 않았는데, 한국의 경우는 하위층의 후생을 희생해 상류층의 후생을 증진시킨 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을 정부가 부유층이 주로 혜택 보는 사상 최대 감세안을 추진한 것을 수긍할 수 있을까.
이렇게 감세정책의 혜택이 대부분 상류층에게 집중적으로 돌아갈 경우 경기 부양 효과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2007년 소득계층별 평균소비성향을 보면 최하위 소득계층인 1분위는 220.7%, 2분위는 112.7%인 반면, 상류층인 9분위는 69.2%, 10분위는 61.0%이다. 저소득층은 돈이 없어서 못 쓰고 있을 뿐 돈이 생기면 생기는 족족 소비하지만, 고소득층은 1000만원이 생기면 그 중에 600, 700만원 정도밖에 소비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기득권 언론에서 말하는 ‘돈 있는 사람이 돈을 써야 경제가 좋아진다’는 말은 경제적 양극화를 합리화하기 위한 궤변에 가깝다. 그렇다면 같은 21조원으로 어느 쪽에 돈을 쓰는 게 경기 부양에 유리할까. 당연히 소비승수효과를 감안할 때 저소득층에 돈을 쓰는 게 훨씬 유리한다. 굳이 돈을 쓴다면 저소득층을 위한 감세와 바우처 제도(용어설명)를 실시하는 게 이번 감세안보다 훨씬 경기 부양에도 유리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나 영국, 호주 등에서 추진하고 있는 방향은 이런 쪽이다.
이처럼 무분별한 감세정책은 경기 활성화 효과는커녕 재정적자를 늘리고,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키고, 물가 상승 등 문제점만 더 키우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현실에서는 감세를 단행해 막대한 재정적자를 초래했던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 때에 비해 증세를 통해 재정적자를 흑자로 반전한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 성적표가 훨씬 좋았던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미 한국도 과도한 감세정책을 추진한 데다 막대한 추경예산까지 일으킨 결과 2009년 한 해에만 약 60조원의 국가채무가 발생하고, 그 가운데 30조원 이상을 국채로 발행해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 때문에 당장 내년 예산 규모를 줄인다는 얘기가 정부에서 흘러나온다. 그런데 ‘강부자’들을 위한 감세정책은 그대로 두고 가뜩이나 경제위기로 고통 받는 서민들에게 돌아갈 예산만 깎아댈 것 같아 두렵다. 현 정부의 감세정책이 ‘중저소득층 민생안정’과 경기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허울에 불과하다는 점은 이미 드러났다. 본질은 현재 집권세력인 강부자 자신들과 핵심 지지층인 부유층을 위한 감세정책인 것이다. 당장 국가채무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고 미래의 자원을 흥청망청 탕진하는 꼴이다. 더구나 이렇게 끌어 쓰는 돈을 가치 있게 쓰는 것도 아니고, ‘강부자’ 등 기득권층만 더욱 배불린다는 점에서 괘씸하기 짝이 없다. 한 마디로 이명박 정부가 전 국민의 미래 재산을 가불해 자기 임기 안에 기득권층을 위해 생색내는 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를 중저소득층을 위한 감세안이라고 포장하고 있으니 얼마나 비열하고 파렴치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