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말부터 경제위기가 본격화하면서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직접 일자리를 만드는 대책이 숱하게 발표됐다. 글로벌 청년 리더 10만명 양성, 중소기업 청년인턴제 (2.5만명), 미래산업청년리더 10만명 양성,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추가대책(3.4만명), 공공부문 청년인턴제(2.3만명), 사회적 일자리 확대(12.5만명) 등 사업 대상과 종류가 어떻게 다른지도 헷갈릴 정도로 많은 대책이 발표됐다. 또 가장 최근에는 28.9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안의 일부로 정부가 3.5조원을 투입해 22만개의 일자리를 유지하고, 55만개의 일자리를 추가로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경기가 극도로 침체된 시기에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 정부 일자리 창출 대책의 구체적 내용을 뜯어보면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현 정부 일자리 대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가 만드는 일자리의 거의 대부분이 처우 수준이 매우 열악한 임시직이라는 점이다. 아래 <도표>를 참고로 살펴보자. 2009년 예산안에 반영된 주요 일자리관련 사업은 연간 73만원( 6만원)~982만원( 82만원) 정도의 예산이 배정돼 있다. 이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일자리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추경예산을 통해 만들겠다는 일자리 또한 이와 대동소이하다. 중소기업 청년인턴제 확대, 숲가꾸기, 아이돌보미 사업 등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 확대, 학습보조 인턴교사, 대졸 미취업자, 조교 채용, 노인 일자리 확대 등 올해 계획했던 단기 일자리를 확대하는 한편, 2조원을 투입해 근로능력이 있는 저소득층 40만 명에게 근로기회를 제공하는 희망근로프로젝트를 새로 도입했다. 2009년 예산과 추경예산에 반영된 일자리들이 모두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6개월 전후의 단기 일자리를 제공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 같은 단기 일자리 사업들은 실제 집행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점과 혼선을 낳고 있어 사업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추경예산안에 반영된 사업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희망근로프로젝트의 실상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희망근로프로젝트는 사전준비 없이 단기간에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중앙정부가 각 지자체에 참여인원 수를 강제 할당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각 지자체는 정말로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선별하기보다는 참여자 수를 채우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예컨대 우리 연구소가 있는 경기도 고양시의 경우 약 2,000명의 참여자 수를 할당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할당된 참여자 수를 채우지 못해 여러 차례 되풀이해 공고를 내고 관내 사회복지기관 등 관련 단체에 수시로 참가자 모집을 독촉하는 전화를 걸고 있다.


이러다 보니 사실상 비교적 충분한 재산과 여윳돈이 있는 노인들이 소일거리 삼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우리가 대상자가 되겠느냐며 반신반의했던 60대 부부가 사업 참여가 가능하다고 해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단 돈 몇 푼이 아쉬운 기초생활 수급자 가운데는 이 같은 단기 일자리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사업에 참여해 소득이 생기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서 제외된다는 이유로 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돼 있다 


또한 희망근로프로젝트를 통해 실제로 진행하는 사업은 풀 깎기나 휴지 줍기, 광고 전단지 떼기, 도로나 광장 바닥에 붙은 껌 떼기, 단순 행정업무 보조 등 기존 공공근로 사업과 거의 다름이 없다. 기존 공공근로사업으로 하던 일을 추가로 하다 보니 실제 일거리가 많지 않아 지자체에서는 그다지 필요도 없는 허드렛일을 만들어내느라 골치를 앓고 있다.


희망근로프로젝트 참가자를 지원받는 대상기관들도 그다지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다. 고양시 관내 한 사회복지관의 경우 약 100명 가량의 사업 참가자를 고양시로부터 할당 받았으나, 실제로는 인력들을 제대로 활용하기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참가자 대부분이 6개월 이내의 단기 근로자들인데다 60대 이상의 고령층이 많아 지속적인 사회복지서비스를 위한 업무를 진행하기보다는 단순 행정업무 보조나 청소나 물품 배달 등 심부름을 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일도 많지 않아 사업 참가자들은 실제로는 하루 두세 시간만 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심지어 제대로 된 인력이 없다 보니 사업참가자들을 관리 감독하는 데 추가로 시간만 빼앗기게 된다고 불평하는 사회복지관 직원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 같은 현실은 비단 고양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전국 지자체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을 가능성이 높다. 거액의 예산을 들여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지도, 정말 혜택이 필요한 저소득층의 소득을 끌어올리지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업을 진행하지도 못하는 전시행정을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현 정부는 한쪽에서는 일자리 창출을 핑계로 대규모 건설토목사업을 벌여 재벌 건설사들에 자금을 지원하여 간접적으로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거액의 예산을 투입해 사회적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지도 지속적이지도 못한 단기 일자리를 마구잡이로 양산하고 있다. 이처럼 건설토목사업이든 단기 일자리든 정부 일자리 창출 대책은 막대한 재정적자 남발로 질 낮은 단기 일자리를 대량으로 양산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결국 막대한 재정적자를 남발하면서까지 사실상 실업자나 다름 없는 사람들에게 질 낮은 일자리를 갖게 해 겉으로 드러나는 실업률만 낮추는 데 급급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일자리 대책들이 반복되는 바람에 겉으로 드러나는 실업률은 경제위기 한 복판에서도 3%대의 기적적인 수치를 나타내는 반면 체감 실업률은 13~15%를 오르내리는 기막힌 괴리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 사업 목적이 저소득 가계에 대한 소득 이전이라면 차라리 일정한 기준을 마련해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에 직접 생활비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취약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만일 정말로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이 목표라면 방과후교사 확대, 영유아 보육사업 지원, 노인장기요양사업 확대 등 어차피 사회적 수요가 있으면서도 저출산 고령화 문제 등에 대응할 수 있는 사업에서 지속성 있는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더 낫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고양시 관내 사회복지관의 한 직원은 “6개월짜리 단기 근로자 100명을 지원해주는 것보다 같은 예산으로 2년간 사회복지사로 일할 수 있는 인력 10명만 지원해줘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복지 서비스가 확 달라질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런데 현 정부의 일자리 대책은 이도 저도 아닌 가운데 재정은 재정대로 낭비하면서 실효는 거두지 못하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전시행정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2000년대 들어 치솟은 부동산가격으로 땅값은 금값이 됐지만, 정리해고 남발과 비정규직 양산 등으로 사람 값은 헐값이 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부동산 거품의 붕괴는 지나치게 부풀어오른 부동산 값을 내리고 상대적으로 사람 값을 올리는 시장의 자기조절 과정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정책당국 입장에서도 경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볼 수도 있다. 사람 값이 상대적으로 높아져야 중장기적으로 양질의 노동력이 증가하고 노동생산성도 높아질 뿐만 아니라 그 같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향상된 임금소득이 다시 내수기반 강화로 이어지는 경제의 선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뤄진 노사민정 대타협을 발표한 직후부터 기업들은 대졸 초임을 대대적으로 깎아 내렸다. 정부는 오히려 이 같은 기업들의 조치를 일자리 나누기라며 독려하는 한편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각종 단기 일자리 양산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88만원짜리도 안 되는 6만원 짜리와 82만원 짜리 일자리 만들기를 정책이라고 떠들어 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에는 관심이 없는 근시안적인 정부 대책과 사회적 평균임금을 깎기에 바쁜 대다수 기업들의 잘못된 경영 관행 때문에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만 유일하게 지난해 4분기 단위노동비용이 -4.3%나 감소했다고 언론들이 보도했다. 조사대상 OECD 27개국의 평균 단위노동비용 증가율이 같은 기간 2.9%나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단위노동비용은 상품 한 단위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인건비를 말하는데, 지난해 노동생산성이 4분기에 급격히 좋아진 게 아니라면 결국 임금이 하락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한국이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이 다른 대부분 국가들과 동떨어져 있음을 시사한다. 다른 OECD 국가들은 경제위기에 직면해 직원들을 해고하는 대신 임금을 깎지 않는 반면 한국은 한편에서는 직원들을 정리해고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단기 임시적으로 재고용 하는 대신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일자리 나누기가 일본이나 유럽 일부 국가들에서처럼 노동자와 사용자가 함께 고통을 분담하는 사회적 연대의식의 발로라고 보기도 어렵다. 같은 조사에서 일자리 나누기가 우리보다 더 보편화돼 있는 일본이나 독일, 프랑스, 북유럽국가들 대다수가 지난해 4분기에 3% 이상의 단위노동비용이 증가한 점이 이를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일자리 나누기는 사용자들이 경제위기를 틈타 사회적 평균임금을 대폭 삭감해 고통을 대부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기업의 잘못된 대처로 점점 많은 국민들이 일자리 불안에 시달리고 건설 일용직과 속칭 알바와 같은 단기 임시직 등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가서는 노동력의 질은 떨어지고 내수기반도 점점 취약해져 한국 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없다. 시간이 걸리고 단기적 고통이 따르더라도 부동산 값을 낮추고 사람 값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수기반을 넓히는 것이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의 전반적 활력을 높이는 길임을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깨달아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기업들이 과거의 특권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이념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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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6. 16. 0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