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내수경기를 보여주는 지표인 소매판매 실적이 두 달 연속 감소,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론에 제동이 걸렸다. 미 상무부는 올해 3월 소매판매 실적이 전월에 비해 1.3% 하락한데 이어 4월에도 0.4% 감소했다고 13일 발표했다. 3월 실적은 지난달 발표됐던 잠정치인 -1.1%보다 더 나빠진 것이다.

이에 따라 그 동안 단기 급등했던 다우지수가 8300선 아래로 떨어졌다.

 

사실 이 같은 미국 소비 침체의 지속 가능성은 여러 차례 지적했던 바다. 그런데도 미국 등 대부분 국가의 정치권과 도덕적 해이에 빠진 금융권은 바닥론 군불 때기에 정신이 없었다. 물론 한국이 그 어떤 나라보다 정도가 심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심지어 시장 예상보다 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난 올 1분기 미 실질 GDP 성장률조차 민간소비지출 기여도가 늘었다며 주가 호재로 삼았을 정도이니 말이다.

 

실제로 미 상무성이 발표한 올 1분기 실질GDP 성장률은 전기대비(계절조정) 연환산 -6.1%였다. 이는 전기의 -6.3%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5% 전후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과는 달리 더 악화된 수치였다. 이로써 미국경제는 70년대 초반의 1차 오일쇼크 이후 두 번째로 3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1분기 지출내역별 미국의 실질GDP 성장률 기여도 가운데 민간소비지출 기여도가 전기의 -3%에서 1.5%로 급반전한 것을 두고 월가는 소비가 바닥을 쳤다며 주가를 끌어올리는 소재로 삼았다. 그런데 실상 민간소비지출이 대폭적인 증가세로 반전된 것은 지난해 연말 크리스마스 세일 때 팔지 못하고 남은 재고를 올 1,2월에 대규모로 땡처리한 결과와 통계적 계절조정에 따른 영향 때문이었다.

 

이 같은 일시적인 민간 소비 증가가 땡처리 효과 때문이라는 것이 3월 미국 소매판매가 -1.3% 감소한데 이어 다시 4 -0.4% 감소한 사실에서 분명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 가계소비는 여전히 침체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미국 가계 및 개인의 카드연체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 은행과 카드회사 등이 카드대출을 억제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상업은행들의 신용카드 연체율 및 대손율이 올 연초부터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는 불황이 심화되고 실업이 급증함에 따라 신용카드 대출을 제때 상환하지 못하는 가계와 개인들이 급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은행과 카드회사들은 카드대출 부실 확대를 막기 위해 카드대출을 억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 가계 소비는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위기를 맞이하여 미국정부가 동원한 정책은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350만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는 7,870억 달러의 경기부양책과 7,000억 달러의 금융안정화법(TARP), 700억 달러의 주택지원사업 그리고 G20 정상회담을 통해 각국이 GDP 2% 이상의 재정확대책을 시행하기로 한 것이 그것이다. 이 같은 정책들은 악화일로를 걷는 미국 경제 침체를 막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경기부양책의 효과가 대부분 단기적이거나 일시적으로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당장에 경기회복 국면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성장동력이 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미국정부가 아무리 경기부양책을 동원한다 한들 현재와 같이 금융시장 신용경색과 주택시장 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2007년의 경제위기 이전처럼 미국 가계가 부동산과 주가 버블 그리고 과다부채를 바탕으로 한 과소비에 기댄 성장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미국 가계의 과소비가 불가능해지면 기업들 역시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과잉투자와 과잉고용에 의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상업은행들의 총신용(대출)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JP모건체이스와 시티그룹의 대출잔고는 작년 연말대비 -6% 감소했으며,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웰즈파고은행도 작년 연말에 비해 대출잔고가 약 -3% 전후 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실채권을 줄이기 위해 대출기준을 강화한 것과 과다부채를 해소하기 위해 가계가 대출을 상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FRB가 금융시장 위축을 막으려 유동성을 아무리 공급한다 해도 은행과 가계가 이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은행에 투입한 대규모 유동성자금이 가계와 기업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고 은행 내부에 현금으로 넘쳐나고 있다. 미국 은행들의 현금보유액은 경제위기 이전의 3000억 달러 수준에서 최근 11,200억 달러 수준으로 급증했다. 미국 정부의 금융시장 신용경색 해소 노력이 헛발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FRB의 말처럼 금융위기가 해소되지 않는 한 아무리 미국정부가 재정확대 경기부양책을 동원한다 한들 미국경제의 진정한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미국의 실물경제는 여전히 하강세를 계속하고 있는데 주식시장에서는 미국경제가 지금까지처럼 수직낙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일부 근거가 희박한 기대 섞인 낙관론으로 주가가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무역수지가 극심한 불황형 흑자 양상을 보이는데도 흑자는 그래도 흑자라며 마치 경제가 안정화 단계에 들어간 것처럼 정부 관료들과 언론들이 떠들어댔다. 그것도 사실상 허수에 가까운 조선 수출 실적 수십억달러를 포함해서 말이다. 같은 시기에 금융기관과 수출 대기업들이 파생상품 거래로 2월과 3월에 연이어 수십억 달러의 자본수지 적자를 기록한 사실을 보도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또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수출 대기업들의 영업 실적도 환율 효과를 빼고 나면 사실상 심각한 실적 부진을 보였는데도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며 주가 호재로 삼았다. 사실상 조작에 가까운 실업률 통계상으로도 매월 실업자 수가 급증하고 중소 제조업체들의 폐업이 속출하는 가운데도 주가는 급등했다. 또한 정부의 각종 투기 조장책과 상당수 언론들의 선동적 보도로 부동산 시장도 서울 강남 재건축 시장을 중심으로 호가 중심으로 재반등했다. 실물경제는 여전히 엄동설한인데 자산시장만 계절도 모르고 성급한 봄 맞이에 나섰던 것이다.

 

더구나 한국은 세계 대부분 다른 국가들과 달리 본격적인 구조조정이나 부동산 버블 조정을 겪지 않은 상태다. 그러면서 경제 상황을 장밋빛으로 포장하기에 바쁜 현 정권은 아직도 한국 경제는 튼튼하다며 호언장담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사실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재계와 적지 않은 언론들은 건설, 조선, 자동차, 철강, 반도체 등은 한국경제의 주력산업으로 경쟁력을 호언장담해왔다. 그러나 자동차산업을 예로 보면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기만적이고 무책임한 것이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한번 물어보자. 한국 자동차산업은 과연 경쟁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는가? 지난 90년대 말의 외환위기 이후 한국 자동차산업은 계속적인 구조조정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99년에는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에 인수된 것을 시작으로 2000년에는 삼성자동차가 프랑스 르노자동차에 매각되었고 2002년에는 대우자동차가 미국 GM에 매각되었다. 쌍용자동차도 2004년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합병되었으며 대우상용차는 인도 타타자동차에 매각되었다. 현대자동차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자동차회사가 글로벌 자동차업체에 매각된 것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한국 자동차산업이 과연 경쟁력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 같은 한국 경제의 엄중한 현실을 잘 모르는 많은 가계들이 정부 관료들과 상당수 언론들이 불어넣은 성급한 봄바람에 헛바람이 잔뜩 들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단기적으로 급등했다. 하지만 이 같은 자산시장의 단기 버블은 실물 경기의 회복세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급락할 수 있다. 특히 단기적인 실적 지표나 호재가 매일매일 반영되는 주식시장과 달리 10~20년간의 긴 파동을 그리며 움직이는 부동산 시장은 대세하락기에 접어들어 있다. 대세하락기인데도 상황 판단을 못하고 헛바람에 들떠 잠깐 반등했던 부동산 시장은 실물 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한 언제든지 재급락할 수 있다. 경기 회복 속도가 기대만큼 따라주지 못하면 그만큼 실망감도 커져 그 하락 폭은 당초보다 더 커질 수도 있다. 엄동설한의 추위에 봄이 온 줄 착각하고 봄옷을 입고 외출하면 감기에 걸리기 십상인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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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5. 14. 0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