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SBS 시사토론의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93%가 국내에 부동산 거품이 있으며, 특히 3분의 2가량은 거품이 심각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같은 국민들의 인식은 매우 정상적인 것입니다. 정말 아무런 거품이 없다면 2000년대 이후 한국 정부와 정치권에서 어쨌거나 부동산 문제를 가지고 생난리를 쳤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현실 속에서도 ‘한국에는 부동산 거품이 없다’고 꿋꿋하게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분 한 분이 서강대 김경환 교수인 모양입니다. 우연히 다른 내용으로 기사 검색을 하다 이 분 코멘트가 들어가 있는 기사 한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내용을 읽고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읽은 구절은 아래와 같습니다.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질가격 기준으로 국내 집값은 다른 나라에 비해 오히려 오름폭이 작다"며 대폭락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가 최근 발표한 논문 '글로벌 집값 붐과 하락'에 따르면 미국 주택 실질가격은 1991년부터 지난해까지 연 평균 2.3%,영국은 4.8%,호주는 4.1% 올랐지만 한국은 1.7% 떨어졌다. (한국경제 2008년 12월 1일자)


우선, 김교수가 주장하는 바를 그래프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김 교수의 말대로 1991년부터 2007년까지 전국 집값을 실질가격으로 나타내면 <도표1>과 같습니다. 김교수가 말하는 실질가격 지수는 국민은행이 발표하는 주택가격지수를 소비자물가지수로 나눈 백분비를 실질주택가격으로 간주해 그 추이를 나타낸 것입니다. 김교수 말대로 1991년 1월의 전국 주택 가격을 100으로 잡을 때 2007년 12월의 실질 가격은 69.4로 떨어졌습니다. 두 기간의 실질가격 차(100-69.4)를 해당 기간(17년)으로 나누면 1.77%로 김교수 주장과 얼추 비슷합니다. 얼핏 보면 김 교수 주장이 사실에 기초한 합리적 주장처럼 느껴집니다.


                                    <도표1>

                                 (주)국민은행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주장이 ‘실체적 진실’을 보여주는 주장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통계를 잘 아는 사람이 통계를 이용해 어떻게 현실을 호도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주장입니다. 왜 그런지를 봅시다.



우선, 김교수가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은 비교의 기간입니다. 1986년 국민은행(당시 주택은행) 주택가격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뒤 부동산 버블기는 크게 두 차례 있었습니다. 한 번은 1987~1991년초까지(편의상 1차 버블기로 부르겠습니다)였고, 두 번째가 익히 아는 2000년대의 부동산 버블기입니다. 아래 <도표2>에서 실질가격 추이를 보면 알겠지만, 김교수가 통계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1991년은 1차 버블기의 정점입니다. 버블 정점기의 가격을 기준으로 삼아 비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버블 정점일 때의 가격을 기준으로 집값을 비교하면 당연히 이후 집값은 낮은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흐름을 모르는 일반인이 그냥 우연히 기준시점을 그 때로 잡았다면 모를까 이를 모를 리 없는 ‘전문가’라는 분이 그렇게 기준점을 잡는 것은 다분히 어떤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기준점을 달리 하면 어떨까요? 김교수가 한 것과 정반대로 실질가격이 가장 낮았던 2001년 3월을 기준점으로 잡아 2007년말의 전국 주택가격을 보면 어떨까요? 역시 <도표2>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전국주택가격은 실질가격으로도 30%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이렇게 보여주는 것도 전체 실상을 올바로 보여주는 방법은 아닙니다.

                         
                                 <도표2>

                                  (주)국민은행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김교수가 근거를 제시하는 방식의 더 큰 문제는 문제가 있는 곳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방식으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아래 <도표3>에서 보는 것처럼 2000년대의 부동산 버블기는 1차 버블기와는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1차 버블기 때는 지방과 수도권의 차이 없이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고루 상승했다면, 2000년대 부동산 버블기 때는 수도권과 지방의 부동산 가격이 상당히 차이를 보입니다. (도표에서 편의상 서울 가격지수를 보여드리지만, 이를 수도권 전체 가격지수 흐름으로 읽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 같은 흐름은 시간이 갈수록 거듭돼 2003년 이후에는 그 차이가 확연히 나타납니다. 따라서 2000년대 부동산 버블은 수도권 중심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도표3>

                                   (주)국민은행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1차 버블기와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여러 주거 유형 중 아파트 가격만 폭등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1차 버블기 때도 아파트가 더 많이 상승했지만, 2000년대 버블기 때는 아파트와 다른 주택 유형과의 가격 차가 매우 커졌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아파트가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사실 거의 표준화(또는 획일화)된 주거 유형으로서 아파트는 위치와 평수 등에 따라 시세가 거의 정해져 주식 종목처럼 거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거래 물량이 많아 환금성이 뛰어나 향후 차익을 실현하기 쉽습니다.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대규모 물량을 지어 막대한 폭리를 취하기에 가장 좋은 사업 대상이 됐습니다. 정부도 ‘공급 부족론’을 핑계로 주택을 대량 공급할 수 있고, 건설경기 부양책으로 쓰기도 좋으니 마다할 리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파트 위주의 부동산 투기가 성행하게 됐고, 2000년대 수도권 주택 공급의 80% 이상을 아파트가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2000년대 부동산 버블은 바로 수도권 아파트가 중심이 된 버블이었습니다. 일반 가계나 국민경제의 체력을 넘어서는 과도한 집값 수준이 문제라면 문제가 있는 곳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따라서 2000년대 부동산 버블을 수도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수도권이 미국의 한 주 정도에 불과한 비중이라면 이렇게 보는 것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수도권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또한 다양한 주거유형이 공존하는 나라와 달리 전체 주택 재고의 절반이 넘고, 신규 보급 주택의 대부분이 아파트인 현실에서 이를 대상으로 버블 수준을 따져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김교수는 이 같은 현실을 완전히 도외시하고 전국 주택가격을 대상으로 삼아 현실을 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키가 150cm인 사람 10명과 키가 190cm인 키다리 10명의 평균 키가 170cm라는 사실을 두고 “키가 큰 사람이 없다”라고 하는 게 온당할까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서울 아파트의 실질가격 추이를 보면 다음 <도표4> 상단 그래프와 같습니다. 국민은행 통계가 작성된 1986년 1월을 100으로 했을 때 실질가격 추이를 보면 2000년대 버블은 1차 버블기 정점을 훌쩍 뛰어넘는 175.3을 기록한 뒤 가격이 내리고 있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올해 3월의 가격 지수가 161.5로 여전히 매우 높은 상황입니다. 물론 이 또한 기준시점에 따른 왜곡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도표4>

                             (주) 국민은행 및 S&P자료로부터 KSERI작성

참고로, 위에서 김교수가 거론한 외국 가운데 미국 사례를 한 번 보도록 합시다. 위 <도표4>는 하단의 그래프는 우리의 서울이나 수도권에 비견할만한 미국 10대 도시의 주택가격 지수(명목)와 물가지수를 1987년 1월을 100으로 2009년 2월까지 살펴본 것입니다. 보면 아시겠지만, 1991년 미국의 주택가격은 버블이 거의 없었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버블의 정점이었던 한국의 1991년과 버블이 없었던 미국의 1991년을 비교 기준점으로 삼아 일방적으로 ‘한국에는 부동산 거품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까요? 이처럼 김교수 주장은 통계를 자신의 입맛대로 활용해 현실을 호도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식인이 어떻게 자신의 지식을 곡학아세와 혹세무민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위에서 보인 실질가격 지수는 사실 부동산 버블의 양상을 보여주기에는 많은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위에서 거론한 2007년의 실질 주택 가격은 2007년 시점의 실질가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2007년의 명목가격을 기준시점(=1986년 또는 1991년)으로 환원하여 기준시점의 구매력으로 평가한 실질가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의 방법으로는 기준시점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실질가격이 왜곡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2007년 시점에서 다른 물가에 비해 집값이 얼마나 부풀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대가격으로서 실질가격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위의 방법이 설명하고 이해하기 편하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점이 있음을 전제로 일정한 기간 동안의 가격 변동 흐름을 보는 도구로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입니다. 김교수가 그런 문제점이 있음을 알고도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특정 시기의 부동산 버블 양상을 진단하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 3권의 3장 ‘부동산정책을 둘러싼 오류 비판’에 잘 나와 있으니 일독해보시기 바랍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김교수의 주장은 이처럼 황당한 주장인데도 학계 등 어디든 제대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상당수 언론들은 문제점을 지적하기는커녕 이 같은 주장을 검증도 없이 확대재생산하기 바쁘고요. 정부 관료들도 이 같은 주장에 휘둘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노무현 정권 시절 재정경제부는 2005년 7월 김교수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사용해 한국의 주택 가격이 1990년대 초반에 비해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버블이 거의 없다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유행가 가사처럼 불러대던 때였는데, 부동산 버블이 거의 없는데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은 왜 벌인다고 한 것인지요? 또한 집값을 잡겠다고 각종 부동산 대책은 왜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만들어냈다는 말인가요? 부동산 버블이 없는 게 맞다면 자신들이 그동안 해온 대책은 모두 있지도 않은 괴물과 싸우기 위한 난리 부르스였다는 고백밖에 안 되는 것이었던 셈입니다. 이런 관료들에 의지해 집값을 잡겠다고 난리쳤던 노 전 대통령도 한심할 따름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만 갖고 되는 자리가 아닙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능력까지 겸비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한국처럼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가 만연하고 강고한 기득권 구조가 자리잡고 있는 나라일수록 더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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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5. 12. 0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