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요즘 서울 강남 재건축을 중심으로 집값이 호가 위주로 반등하자 각종 인터뷰 요청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동안 지난해 하반기부터 집값이 계속 떨어질 것이라고 믿었던 분들 가운데는 집값이 다시 급등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큰 그림(big picture)’을 보셔야 합니다. 부동산시장을 둘러싼 국내외 거시경제 흐름을 이해하고(이건 일일이 여기서 다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우리 연구소의 경제시평을 꾸준히 정독하신 분이라면 잘 아실 것입니다) 시기적으로도 길게 보시면 최근 일부 지역의 반등은 그야말로 매우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반등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며칠 전 쓴 글(http://unsoundsociety.tistory.com/entry/KBS-뉴스라인에서-못다-말한-최근-부동산-상황-진단)에서 수도권의 주택 거래량을 그래프를 통해 보여드렸습니다만, 전월 대비 30% 급증했다는 서울 거래량이 여전히 2006년말 고점 대비 5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거래 침체 양상 속에서 일어나는 부침 현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요. 이미 말씀드렸으니 되풀이해서 말씀드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오늘은 실질 가격 지수 추이를 통해 현 상황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아래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2000년대 주택 투기는 사실 아파트에 국한된 투기였습니다. 아파트의 경우 위치와 평수 등에 따라 가격이 대체로 표준화돼 있고 환금성이 좋았던 덕에 투기의 대상으로 삼기에 딱 좋았던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들의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 한몫했겠지만 그 선호도조차 투기와 맞물려 한껏 커졌다고 봅니다. 그런데 서울 아파트의 명목가격 지수만 보면 집값은 계속 상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하지만 정말 집값은 계속 상승하기만 하는 것일까요? 매년 물가 수준을 반영한 서울 아파트의 실질가격을 나타내는 아래 그래프를 한 번 살펴보십시오. (물론 국민은행의 주택가격 지수도 문제가 많은 통계인데다 물가지수조차도 현실과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어 사실 실질가격으로 나타내는 게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큰 그림을 보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봅니다.) 이 그래프를 보면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상승(1987~1991년 5월) → 하강(1991년 6월~1998년 11월) → 상승 (1998년 12월~2007년 2월) → 하강 (2007년 3월~ 현재)의 파동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책에서도 설명드렸지만, 2000년대 서울의 부동산(아파트) 거품은 1991년 초의 실질가격 지수인 152.6을 훨씬 넘는 175.3을 기록했다가 올해 3월 현재 161.5까지 내려온 상태입니다. 고점 대비 가격이 조금 떨어지기는 했습니다만, 여전히 1991년초 버블기 때보다도 더 높은 상태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기에서 서울 강남 재건축 지역의 투기성 집값 반등을 중심으로 집값이 다시 대세 상승할 것 같나요? 아마 그렇게 된다면 한국은 아마 냉엄한 시장의 법칙을 이탈한 유일한 사례로 기록될 것입니다.
물론 지금의 정부의 각종 투기조장책 등에 따라 지금의 일시적 반등기가 경우에 따라서는 몇 달 더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주저앉을 것입니다. 한국 경제의 체력이 지금의 높은 집값을 도저히 지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가 여러차례 되풀이했으니 또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직도 외환위기 직후의 V자형 급반등 상황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와는 대내외 상황이 너무나 다릅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우리 가계 순저축율이 20%에 육박했고 부채는 적었으며 세계 경기도 동아시아를 제외하고는 좋았습니다. 외환위기 때 꼴아박았지만 90년대 초중반 내내 6~8%대의 고도 성장을 했고, 외환위기 직후인 99년에는 때마침 미국을 중심으로 IT버블까지 일어나 우리도 거기에 편승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 가계는 순저축율이 2% 수준으로 떨어졌고, 가계 부채는 740조원에 이릅니다. 부동산 담보대출만 약 310조원에 이릅니다. 전세계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를 맞고 있습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다른 나라 경기가 좋아지지 않는데 먼저 회복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5% 전후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내년에도 올해 수준보다 크게 나아지지 못할 것입니다. 은행의 예대율은 여전히 135% 전후 수준이어서 부동산 버블기 때처럼 마구잡이로 펌프질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오히려 과잉 대출을 계속 줄여나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을 무시하고 정부의 강압에 못이겨 다시 부동산 대출을 늘여나간다면 정말 이 나라는 절단 나는 상황이 오겠지요.
사실 이렇게 구구한 설명을 드리기 전에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1월과 지금의 실질가격지수만 보더라도 어떤 상황인지는 충분히 짐작되실 겁니다. 용수철에 비교하자면, 외환위기 때는 용수철이 극도로 수축돼 언제든지 되튀어오를 수 있는 에너지가 응축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튀어올랐던 용수철이 도로 수축되는 국면의 초기입니다. 많은 분들이 90년대 초중반처럼 연착륙을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아마 여러 여건상 그때와 같은 연착륙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주식 격언에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하는데 부동산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90년대 초중반보다는 하락폭도 더 크고 하락기간도 더 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더구나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2010년대 한국의 부동산시장은 저출산 고령화의 충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입니다. 그 충격은 세계 다른 어느 나라보다 깊고 클 것입니다. 우리가 미리 그 충격에 전략적으로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1990년대 버블 붕괴기의 일본과 비슷한 양상이 전개될 가능성도 상당히 높아 보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썼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unsoundsociety.tistory.com/entry/90년대-일본과-비슷해질-2010년대-한국-부동산)
요즘 방송 인터뷰를 하면 PD들이 결국 꼭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럼 지금 집을 사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참 곤혹스럽습니다. 저는 그냥 ‘큰 그림’을 보여줄 뿐입니다. 저도 사람인 이상 100%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든데, 더구나 투기성 자금에 의해 움직이는 단기적 흐름은 더더욱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개개인에 따라 사정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소득이 충분하고 빚을 안 져도 되고 당장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모시기 위해 일정한 지역에 집이 필요한 사람과 수억원의 부채를 일으켜 투자용으로 집을 사려는 사람의 판단은 판이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그런 사정도 모르고 어찌 감히 팔라, 마라 할 수 있을까요? 또 설사 그런 사정을 안다 하더라도 제가 소위 재무 컨설턴트도 아니고 그런 말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부동산 가격이 대세하락에 접어든 이 순간에도 ‘부동산 불패 신화’에 빠져 있는 분들에게 큰 그림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일시적 흐름만 보고 가볍게 움직였다가 큰 낭패를 볼 수 있다고 경고하는 수준일 뿐입니다. 제가 보여드리는 큰 그림을 참고로 하되 결국 결정은 각 개개인 스스로가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좀더 욕심을 부리자면 단순히 개인 가계 차원의 고민에만 머무르지 마시고 부동산 거품의 폐해를 인식하고 많은 분들이 집값 걱정 없이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데 생각과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가 그래서 요즘 PD들의 질문에 답하는 핵심내용은 이런 것들입니다.
“지금은 집값 대세하락기 초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폭탄 돌리기’ 국면이다. 지금 잘못 주택시장에 들어갔다가 도화선에 불이 붙은 폭탄을 떠안는 격이 될 수 있다.”
“실수요자도 아니면서 지금 주택 투자에 나서겠다면 굳이 안 말린다. 다만, 그렇게 한다면 길게 잡아 수개월 안에 치고 빠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주택시장이 주식시장도 아니고 기획부동산 같은 조직화된 투기세력이 아닌 개인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극히 낮을 것이다. 제때 빠져나오지 못하면 결국 폭탄을 떠안게 되는 꼴이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길게 보라. 5년 후인 2013년에도 지금보다 집값이 올라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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