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년대 국내 주택시장은 과거 일본 주택시장이 1990년대 부동산 버블 붕괴 후 겪었던 장기침체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해 보인다. 국내 주택시장의 수급사정과 이를 둘러싼 경제적, 정치적 환경과 인구동태적 변화가 당시 일본 사정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현정부와 정치권의 잘못된 정책대응 역시 과거 일본과 너무나 비슷하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아래 <도표>에서 80년대 말 일본의 부동산 버블도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3대 도시권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한국의 부동산 버블이 주택 그 중에서도 아파트를 중심으로 발생한 반면 일본의 부동산 버블은 상업용지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일본 3대 도시권의 지가 추이를 보면 최근 3~4년 동안 소폭의 반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이 고점이었던 1991년 수준에 크게 못 미침을 알 수 있다. 특히 일본 3대 도시권 상업용 지가는 고점 대비 20%를 약간 넘는 수준이며, 버블이 발생하기 전인 1986년 지가에 비해서도 60% 수준에 머물러 있다. 물론 이 기간 동안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지가는 이보다 훨씬 더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도표6> 일본 주택시장 추이


()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일본의 전국 주택보급률은 이미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던 1988년에 111%

를 넘고 있어 버블 발생 전부터 100%를 넘었다. 한국도 2008년 추정 전국 주택보급률이 110%에 육박할 정도로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일본의 인구도 주택유효수요 계층인 35~54세 인구가 1990 3,680만 명으로 정점에 달한 후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 2005년에는 3,400만 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한국도 35~54세 인구가 2010년경을 정점으로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일본처럼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는 시점을 전후해 주택 유효수요 인구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주택 유효수요 인구가 줄어들고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는 상황에서도 일본에서는 대규모 신규주택 공급이 계속됐다. 일본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으로 건설업체들이 살아남아 대규모 신규주택을 계속 공급한 때문이다. 일본의 연도별 신규주택착공 추이를 보면 부동산 버블이 발생하기 전인 1980년대 초에는 매년 120~130만호 전후 수준의 신규주택이 착공됐으나, 부동산 버블이 시작된 1986년을 거쳐 1987~1990년 동안에는 연간 170만호 전후 수준의 신규주택이 착공됐다. 또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한 1991년 이후 1997년까지 연평균 150만호 수준을 유지했다.

일본정부는 부동산 버블 붕괴를 막기 위해 일본 건설업체들의 아파트 건설을 강력히 지원했다. 빠른 속도로 금리를 내려 주택금융공고와 은행이 주택자금대출 세일을 벌이도록 하는 한편 거액의 주택 감세라는 미끼를 던져 싸늘하게 식어가는 주택수요를 불러일으키려 애썼다. 수요와 공급 양 측면에서 일본 정부의 각종 지원책으로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아파트 공급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주택 공급량은 19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일본 내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버블 발생 이전의 120만 호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일본경제가 버블 붕괴 후 2차 위기를 맞자 그 동안 일본 정부의 재정호흡기에 기대 연명해왔던 대형 금융기관과 종합건설업체들이 잇따라 파산하기 시작했다. 이때는 부동산 버블 붕괴에도 불구하고 주택이 지나치게 과잉 공급된 데다 인구 감소로 인한 주택수요 감소도 본격화한 뒤였다. 주택 공급은 연간 120만호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지가는 계속 하락했다.

또 전체 주택 가운데 빈 주택의 비율을 나타내는 주택 공실률도 1993 9.8% 수준에서 2003년에는 12.2%까지 증가했다. 일본 전국의 주택 8채 가운데 한 채 가량이 빈 집으로 남아도는 상황이 된 것이다. 더 이상 시장수급에 의한 가격하락 조정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며 부동산 거품이 어느 정도 빠졌다고 여겨지던 90년대 중반에 분양된 주택이 2000년대에도 자산가치가 절반에서 3분의 1까지 추가로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주택시장의 버블 붕괴와 장기침체 과정, 그리고 그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정책대응 양상이 너무나 비슷하다. 이것은 한국의 향후 부동산 시장 역시 과거 일본이 밟아왔던 전철을 답습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주공 등을 동원해 미분양 물량을 매입해 자연스러운 시장수급에 의한 가격하락 조정을 가로막고 있다.

4대강 정비사업 등 당장 시급하지 않은 대규모 토목사업을 추진하여 건설업체들에게 눈먼 돈을 대줌으로써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을 가로막고 있다. 대주단 협약이라는 틀을 만들어 구조조정 시늉을 내고 있으나 시장 수급에 의한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방해할 뿐이다. 분양권 전매제한과 양도소득세 감면, 재건축 규제완화 등 각종 투기조장책을 마구잡이로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잘못된 투기조장책들은 결과적으로 주택시장의 자생적 복원력을 죽여 중장기적으로 주택시장의 장기침체를 초래할 뿐이다. 주택시장의 자연스러운 가격하락 조정을 가로막는 바람에 오히려 부동산 거래가 단절되고 침체를 장기화하고 있다. 그로 인해 부동산중개업과 인테리어, 이삿짐서비스 등 부동산과 연관된 생산서비스 경제영역마저 더욱 위축되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버블이 더 극심했던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일본은 금융기관과 기업들, 특히 부동산개발회사 및 건설업체들이 투기를 주도했다. 그러나 한국은 중간 및 상류층 가계가 대규모로 부동산 투기에 가담했다. 따라서 향후 부동산 거품 붕괴와 함께 막대한 가계부채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장기간의 소비위축이 불가피하다.

필자는 주택 공급을 무작정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와 인구동태적 변화 등을 충분히 감안한 주택공급을, 현 세대와 자식세대의 소득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주택공급을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주택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의 힘에 의해 버블이 붕괴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시장의 힘에 의해 자연스럽게 주택정책을 바꿔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예컨대 경기불황에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와 무주택자, 그리고 1인가구 등 중하위 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전세주택의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명박정부는 오로지 부동산 가격 올리기에만 혈안이 된 엉터리정책에 몰입하지 말고 중장기적으로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과 공동체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주택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주요 인물들 가운데 부동산 부자 아닌 사람을 찾기 어려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 없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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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4. 15. 0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