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보도국 뉴스2팀에서 현직 기자로 일하는 김수진기자가 저희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의 '언론개혁'란에 최근 YTN사태 100일을 맞은 소감을 보내왔습니다. 최근 YTN 사태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좀더 폭넓은 독자들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글을 읽으며 가슴 한 켠이 아려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글 마지막에 있는 동영상도 꼭 보시길 바라고요. YTN노조, 더 나아가 이 땅에서 공정한 언론을 구현하려는 모든 분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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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을 맞는 우리들의 자세

  
 안녕하세요, 어린달님  김수진입니다.  석 달 쯤 전, 여름의 일입니다.

 "너무 앞에 나서지 마라."

 "괜찮아요. 저는 앞에 나서는 것도 아니에요. 저희 회사 사람들은 다 똑같은 생각이라 누구만 앞에 나서고 그런 것도 아니에요. 다 같이 해요 그리고.. 그런 거 무서웠으면 기자 하지도 않았어요. 입바른 소리 하라고 된 게 이 직업인데... 그런 거 무서우면 그냥 일반 회사 다녀야지"

 "그런 소리 마라. 옛날에 동아일보 사태 때 해직 기자들이 오랫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니 ? 너는 어려서 모르지만..."

 석 달 후, 저희 아버지의 걱정처럼, 33명이 징계를 당하고, 그중 6명은 해임을
당했습니다.

저는 충분히 '앞에 나서지' 못했는지 징계도 정직도 감봉도 경고도 받지 못한
'살아 남은 자'가 됐습니다. '살아 남은 자'들은 분노에 울부짖었지만, '죽은 자'들은 오히려 "우리 때문에 무릎을 꺾는다면 용서하지 않겠다"며 우리를 다독였습니다. 우리는 당장 간부급 선배들의 각성을 촉구하던 단식을 걷어치우고 다시 '블랙 투쟁'에 나섰습니다. (보셨죠? 앵커와 기자들이 검은 옷으로 조의와 항의의 뜻을 표현했습니다)

 징계 이후 국정감사에서 손에 피를 묻힌 '자칭 사장' 구본홍과 YTN 노종면 노조위원장이 출석해 증언하며 이슈가 됐습니다. 구본홍씨는 편의에 따라 기억이 나기도 하고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하다며 스스로가 언론사 사장이 될 자격도 없고 그럴만한 정신 건강도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YTN 발전에 눈꼽만큼도 기여한 적 없는 사람이 YTN을 피땀흘려 만들고 키운 유능한 기자 33명을 징계하고 해고한 데 대해서는 '무자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해직 사태 이후에도 구씨는 단 며칠만 출근하는 척을 하다가 늘 그렇듯 노조의 저지로 회사에는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어느새 찬바람이 옷깃에 스며드는 계절이 됐고, 우리는 낙하산 사장 출근 저지 투쟁 100일을 맞았습니다. 이제는 농성 천막에 앉아있으면 찬 기운이 바닥에서 술술 올라오는 게 느껴집니다.

100일을 맞는 저희들의 자세는 투쟁 1일째와 다름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 자리 숫자를 보면서 기가 막히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좀 지칠 때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요.

저는 개인적으로 저희가 '투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창하게 '언론자유'를 위해 싸운다며 목에 힘을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기자라는(혹은 촬영기자라는,
기술감독이라는, 회계담당,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진 직업인이고, 생활인이고, 뉴스를 만들고 전달하는 회사에서 일하며 이걸로 녹을 먹으니 그만한 값을 시청자들에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정방송, 바른 보도가 저희가 생산하는 '정품'입니다. 저희는 그저 처음과 똑같이, 공정한 방송을 할 수 있는 독립성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려 합니다. '불량 뉴스, 짝퉁 뉴스'를 만들어내라고 지시하는 낙하산 사장을 몰아내고 '불량률 0'에 도전해야죠. 저희만 이런 노력을 하는 게 아닙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도 직업인으로 생활인으로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지 않나요? 이 싸움은 언론사 종사자로서 당연히 저희가 해야할 의무일 지 모릅니다. 다른 언론사들도 같은 상황이면 그럴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특정인의 선거 캠프 참모로 일한 정치인은 언론사 사장이 될 수 없다는 상식을 지키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의 싸움이 천 일이 되더라도  만 일이 되더라도, 그리고 구본홍씨가 사퇴하더라도 YTN이 존재하는 한 영원할 것이라고, 영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본홍씨가 언제 사퇴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누가 오더라도 저희는 늘 공정방송을 해야 하고 그 최소한의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되었던 보도의 독립성에 손을 대려는 자들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어떤 분들이 걱정하시는 것처럼 YTN은 이른바 '좌편향'이라서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수 언론사든, 진보 언론사든, 중도 언론사든, '제대로 된' 언론사라면 대선 캠프 특보 출신 정치인은 사장으로 받지 않는 게 정상입니다. 
  
사실 이런 기본적인 상식만으로도
구씨는 YTN의 사장일 수 없지만, 저희가 그동안 투쟁 과정에서 겪은 구씨는 도덕적으로도 큰 흠결이 있어 언론사 사장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구씨가 회사대신 특급호텔 스위트룸을 집무실로 애용하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며 펑펑 쓴 돈이 석달간 노조가 밝혀낸 것만  4500만원인데, 회사는 '그게 아니고 3800만원'이라고 공식적으로 해명했습니다. --; 
  
백 번 양보해 3800만원이라도 해도, 외환위기 때 6개월 동안 월급을 못 받아가면서도 회사를 살렸고, 10년 동안 돈이 없어서 오디오맨도 없이 취재기자가 카메라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취재했던, 송출비 30만원이 지금도 아까워서 촬영 테이프를 들고 달리는 YTN 직원들로써는 피를 토할 일입니다.

YTN이 안정적으로 흑자를 낸 것도 불과 최근 몇 년의 일인데, 사원들의 연봉보다도 많은 돈을, 사장 인정도 받지 못하는 자가, 회사에 뼈빠지게 일해 돈 벌어다 주는 사람들의 목을 잘라가며 호텔에서 물 쓰듯 쓰다니 정말 용서가 안됩니다. 참고로 팀원들이 징계받아 제작이 중단된 돌발영상만 해도 광고수입이 억대에 이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YTN 입구를 지키며 구본홍씨보고 '돌아가라'고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저는 살아남은 죄를 가진 자이기에 징계받은 동료와 선배들에게 늘 미안하고 죄스럽습니다. 그들이 없으면 저도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결코 그들이  홀로 고통받게 하지 않겠습니다. 결코.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오늘 (24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백일을 맞는 25일 0시까지 출근저지 투쟁 100일을 맞아서 저희가 문화제를 엽니다. 그동안 응원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릴 수 있는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회사 그래픽팀 사우 서정호씨가 100일을 기록하는 뮤직비디오를 제작했습니다. 배경음악은 김창기의 '여섯개의 넥타이로 살아남은 자의 노래'인데, 이 노래 가사의 일부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것 만은 너에게 꼭 약속해 줄께

  너무 예쁜 우리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그런 아빠가 되겠다고

  너의 이마에 다짐할께 
  
  너무 예쁜 우리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그런 아빠가 되겠다고

  너의 입술에 다짐할께


    뮤직비디오 '우리는 왜 눈물을 흘려야 하나'

by 선대인 2008. 10. 24. 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