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일 국토해양부는 저렴한 주택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를 대규모로 해제하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꼭 필요하다면 다소간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한이 있더라도 땅값과 건축비를 내려 분양하면 훨씬 싼 가격으로 집을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그린벨트를 해제해 싼 가격으로 서민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말은 참으로 후안무치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 33개 뉴타운을 무더기로 지정한 탓에 대규모 동시 철거가 이뤄져 서민들이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한 장본인이 아닙니까? 서민 주거에는 관심 없이 정치적 욕심 때문에 강북 집값 올리기에 여념 없었던 사람이 바로 이 대통령 자신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제 와서는 그린벨트를 풀어 서민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한다면 뻔뻔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내놓은 대부분의 주택 및 부동산 정책은 계속 높은 집값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정책들입니다. 국내외 거시경제 환경이 부동산 버블 붕괴 압력을 높이고 있어서 집값이 떨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정작 이대통령 본인은 전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심리적 갈등도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뉴타운 지역의 극심한 전세난을 보면서도 한 번 사과나 반성을 한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 새로 뉴타운 지정권을 가진 서울시와 협의도 없이 뉴타운을 추가 지정한다니요? 한 마디로 말이야 서민 주거 안정을 내세우지만, 건설업계에 사업물량 퍼주기에 여념이 없는 꼴입니다.

사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의 실제 효과나 정책 조합(Policy mix)의 정합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개념도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자신이 느끼기에 점수 딸 수 있다고 느끼면 정반대의 정책 효과를 가져와도 내지르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아무 정책이나 듣기에 솔깃하다면 막 질러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쪽에서는 뉴타운을 통해 서민들을 쫓아내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린벨트를 해제해 서민주택을 만든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나 않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 신자라서 ‘한 손이 한 것을 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을 엉뚱하게 실천하는 것입니까?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이 대통령의 스타일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저렴한 주택을 공급한다는 이대통령 발언과 국토부 발표의 허구성을 짚고자 합니다.

시계 태엽을 되돌려 2004년 7월로 가봅시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국민임대주택건설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 대규모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국민임대 주택 공급을 추진합니다. 당시 이슈가 됐던 판교신도시의 경우 공영개발을 통해 100% 장기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주장했습니다. 김광수 소장님은 이 같은 방식의 주택사업이 재무적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며 이론적 모델까지 만들어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판교를 로또 투기판으로 만들어 투기세력에게 먹잇감만 제공했습니다.

정부 스스로 벌린 로또 투기판 때문에 판교발 집값 광풍이 일자, 정부는 전량 국민임대주택을 짓겠다며 해제한 고양 삼송과 남양주 별내 지역의 절반을 분양 물량으로 채우겠다고 했습니다. 이때 당시 건교부가 내세운 명분은 ‘판교급 신도시’를 만들어 주택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집값은 어땠습니까? 집값이 잡히기는커녕 해당 지역까지 투기가 극성을 부려 오히려 집값을 치솟게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직접 추진했던 은평뉴타운 지역을 예로 들어봅시다. 은평뉴타운 사업지구는 대부분 그린벨트 풀어서 조성했습니다. 그런데 평당 토지 보상비가 판교신도시의 평균 3.5배가량 됐습니다. 지금 거론되는 서울과 수도권 경계 지역의 그린벨트라고 보상비가 크게 더 적게 들어갈까요? 더구나 황당하게도 아파트 짓는데, 턴키방식(이미 시사경제 회원들에게는 설명드린 바 있지만, 상위 재벌건설업체들에게 엄청난 폭리를 취하게 해주는 발주방식입니다)으로 발주를 해서 엄청난 고분양가 만들었습니다. 후임 오세훈 시장이 똥바가지 뒤집어썼지만, 2006년 은평뉴타운 고분양가 사태로 주변 집값 들썩이게 만들었죠. 은평뉴타운 인접 서대문구나 은평구의 아파트 가격이 평당 700만~800만원이던 시세가 1200만~1300만원으로 수식상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전 치밀한 도시계획 없이 그린벨트 풀어서 급하게 만들었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도로나 학교가 제대로 확보 안 돼 언론에서 욕 엄청 먹었죠? 지금 입주 초기여서 그렇지 뉴타운 전체 세대가 다 입주하면 교통대란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오세훈 시장이 분양가심의위원회 가동해 분양가를 평균 12%정도 낮춘 덕에 분양은 다 됐는데, 지금 입주율 30% 정도밖에 안 됩니다. 생활 인프라가 없어서 주민들 불만 대단하고요. 물론, 뉴타운 사업으로 추진됐다는 특수성을 어느 정도 감안은 해야겠지만, 그린벨트 풀어서 집값을 낮췄습니까? 그렇다고 도시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주택단지가 들어섰나요? 사람은 그 사람이 해온 과거 행적을 통해 판단하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사기꾼이 어느날 갑자기 ‘난 사람 안 속여’ 하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시겠습니까?

지금 한국 주택 문제의 핵심은 국토부 표현대로 ‘괜찮으면서도 저렴한 주택(decent and affordable housing-미국에서 공공 주택 문제와 관련해 관용구처럼 나오는 표현입니다)’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형성된 집값이 너무 높아서 웬만한 고소득자도 빚을 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상태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공급자인 건설업체의 사기적 폭리 분양가와 수요자의 투기 행태가 빚어낸 거품 집값입니다. 정부는 이를 막기는커녕 허황된 ‘시장원리’ 운운하며 실제 건축비보다 약 2배나 높은 표준건축비를 승인해주는 등 거품 집값을 사실상 용인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로서는 결국 일반 국민들이 큰 부담 없이 집을 살 수 있도록 집값을 낮춰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게 가능하냐고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서울시가 진행하고 있는 ‘장기전세’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장기전세는 주변 전세 시세의 60~80%선에서 공급합니다. 최장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습니다. 재산세와 취등록세 등 세금 부담도 없고 주거 안정성까지 갖추고 있는 매우 좋은 주거상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올 들어 미분양이 속출하는 데도 장기전세는 최고 80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매매할 수 있는 분양주택도 아니니 판교분양 때와 같은 투기도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주택을 전체 수도권 주택 재고의 20%까지 채운다고 해보십시오. 기존 매매 수요의 상당수가 장기전세로 이동할 것입니다. 그러면 집값이 얼마나 안정되겠습니까? 이렇게 이미 여러 가지 장점이 입증되고 사람들에게도 매우 인기 있는 장기전세가 이번 500만호 공급계획 중에 겨우 얼마를 차지하는지 아십니까? 전국에 걸쳐 겨우 10만호입니다. 대신 주택정책 목표에 오히려 역행하는 지분형 아파트니 정책 효과가 의심스러운 신혼부부용 아파트니, 노후용 아파트니, 보금자리 아파트니 이름만 사람들이 혹하게 지은 주택 유형들이 많습니다. 나중에 이명박 대통령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고 싶어서죠.

공공 분양아파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연구소(김광수경제연구소) 김광수소장님께서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 3권에서 이미 저렴한 장기임대주택에 대한 이론적 토대는 제공하셨습니다. 사실 소장님 이론을 빌어 제가 쓴 책에서 주장한 내용이 서울시의 ‘장기전세’ 제도로 현실화됐으니, 현실로도 일정하게 입증된 셈입니다. 사실, 관련 제도만 갖춰지면 현재 장기전세보다 훨씬 더 저렴하게 공급할 수도 있습니다. 공공 분양도 똑같이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습니다. 공공이 저렴하게 주택을 짓는 과정은 똑같고 지은 주택을 장기 임대(전세)로 주느냐, 분양하느냐 하는 공급방식만 다를 뿐이니까요.

그래도 의심하는 분들을 위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큰 틀에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주택 공급 과정에서는 엄청난 개발이익이 생겨나는데, 이 개발이익은 땅주인, 거주자, 개발 대행기관(토공, 주공, 각 지방도시개발공사 등), 시행사, 설계사, 시공사, 투기세력 등에 의해 배분되고 있습니다. 주택 공급 과정에서 생겨나는 막대한 개발이익이라는 갈비를 여러 세력들이 돌아가며 뜯어먹어, 결국 수혜자가 돼야 할 서민들은 앙상한 뼈다귀만 핥게 되는 꼴입니다. 그러면 이런 개발이익을 공공이 최대한 흡수해 그것을 저렴한 장기임대나 공공분양 아파트로 공급하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흡수하느냐고요? 현재 분양가 가운데 택지비가 보통 30~50% 가량 차지하고, 직간접공사비가 40~50%정도로 두 가지가 거의 90%를 차지합니다. 우선, 택지비를 봅시다. 지금은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투기세력이 뛰어들어 땅값을 띄워 놓은 다음 감정평가를 통해 토지 보상을 하므로 개발이익이 땅주인과 거주자, 투기꾼들에게 돌아갑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정부가 개발 계획을 사전에 세워두고 사전 매입 후 개발에 들어가는 식으로 하면 보상비를 얼마든지 아낄 수 있습니다. 물론 도심 지역에서는 쉽지 않겠지만, 판교나 용인, 동탄 정도쯤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부지 확보까지만 정부가 하고 이후 주택 공급과정은 이를 통합해서 관리할 CM(Construction Management)회사나 컨소시엄을 경쟁입찰을 통해 선정해 사업을 맡깁니다. 따라서 택지 조성도 토공이나 주공이 하지 않고 CM회사가 가격 경쟁을 통해 선정한 민간 토목업체가 합니다. CM이 경쟁입찰을 붙여 시공사를 선정하면 실제 건축비도 절반 이하로 낮아질 것입니다. 공기도 현재 26~30개월 정도인데 20개월 정도로 단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지금의 분양가보다 절반 아래로 훨씬 빨리 공급할 수 있습니다. 부실시공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을 묻고 통제하면 방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공공주택을 비롯한 공공건설사업은 이른 전문 CM이나 PM(Project Manager)들을 통해 얼마든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홍준표의 토지임대부 주택 같은 사기적인 ‘반값아파트’가 아니라 진짜 ‘반값 아파트’ 얼마든지 실현하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현재 상태에서는 안 됩니다. 지금 국내에서 책임감리와 비슷한 역할 정도만 하게 하는 CM제도를 CM이 건설공사 전반을 관리하되 공사 전반에 대해 책임지게 하는 ‘CM at full risk 제도’를 도입해야 하고요. 또 토지보상, 감정평가, 감리제도, 금융기관 공사보증 제도, 하도급 구조, 건설업역 제도 등 건설산업 제도 전반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집권세력의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모든 권력기관과 관련 정부부처를 동원해 ‘방송장악’에 기울이는 정도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이런 사기적 분양가의 거품을 뺄 의지도 없지만,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조차 없는 것 같습니다. 대신 자신들 멋대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도시 기반시설 과부하에 대한 고려는 아랑곳없이 용적률을 올려 겨우 집값의 15% 정도를 낮추겠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이는 사실상 거품 분양가는 그대로 용인하면서 이번 정책을 서민용으로 포장하기 위한 포장술에 불과합니다.

덧붙이자면 제가 제시하는 방법대로라면 지금 같은 방대한 구조의 토공, 주공 필요 없습니다. 토공, 주공은 정부의 기획에 따라 토지 매입하고 CM사 선정해서 정부 계약을 대행하고 계약 이행을 점검하면 됩니다. 또 향후 장기 임대주택이 늘어나면 임대주택 관리 업무 부문을 키우면 됩니다. 이처럼 공기업 개혁이라고 하면 변화하는 환경에 걸맞은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 주체로서 공기업의 역할과 기능을 점검해 재조정하는 게 우선입니다. 거기에 맞게 조직을 Redesign하고 Restructuring, Reengineering해야 합니다. 그런데 토공과 주공 통폐합 논의에서 보듯 그런 것은 전혀 없고, 그저 무식하게 Downsizing 개념밖에 모르는 게 이 정부입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벌이는 공공사업 물량을 봤을 때 토공, 주공의 반발이 심해지면 통폐합도 나중에 없던 일로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설사 통폐합된다 한들 정부의 엉터리 정책 사업들을 계속 받쳐주는 도구일뿐이라면 그게 어떤 큰 의미가 있을까요?

위에서 봤듯이 공공정책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 목표를 달성할 최적의 방법을 찾는다면 사실상 방대한 공기업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공공의 목표를 훨씬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가 공기업 개혁과 관련해 외치는 구호는 온통 통폐합 아니면 민영화밖에 없으니 정말 한심할 따름입니다. 선진국의 정부 개혁이 궁극적으로 경쟁 체제 도입을 통해 국민 전체의 후생 수준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현 정부는 공기업의 영역을 줄이거나, 공공독과점 구조를 민영 독과점 구조로 바꿔 민간재벌기업의 사업 기회를 키워주는 것을 공기업 개혁으로 여기고 있으니 한숨밖에 안 나옵니다. 공공과 민간의 역할에 대한 개념부터가 엉망인데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제가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정말 서민의 주거안정을 걱정하는 도덕적이고 역량 있는 정부라면 그린벨트 해제 안하고도 얼마든지 집값 안정시키고, 서민 주거안정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고,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되고 개발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든 자기 임기중 생색낼 수 있는 거창한 계획 발표만 하면 된다는 게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그는 서울시장 때부터 그런 스타일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실제로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 고위 간부는 “이 대통령은 정책 방향의 큰 틀은 없이 자기가 생색낼 수 있는 사업을 찾아내 추진하고 포장하는 데는 선수”라고 말하겠습니까?


by 선대인 2008. 9. 22.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