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트럼프에 대한 특검 수사가 시작됐다는 기사 아래에 "우리는 고생 끝, 니네는 이제 시작이네"라는 댓글을 봤다. ㅋㅋ 미국 국민들도 참 고생이네,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여전히 미국이 부러운 게 있다. 미국은 사회적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훨씬 잘 작동한다는 것.
국정원 댓글 개입 사건은 내가 보기에 트럼프의 '러시아 게이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수사도 해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런데 미국은 정권 초기에 바로 대통령을 향해 칼을 빼들고 있다. 그리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같은 유력지들이 그 같은 특검이 가능하도록 뒷받침한다. 한국의 조동문 같은 언론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심지어 정권 초인데도 정치권과 언론에서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한다. 부당한 권력의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 있어도, 그 권력의 정점에 사정의 칼을 들이댈 수 있다는 것. 우리는 정권 말기에나 가능했다. 이런 게 그래도 미국의 힘이라고 느껴진다.
이와 관련해서 어젯밤 읽은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에서 본 스탠포드대 한국계 교육학자 폴김 교수님의 말씀이 와닿는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조직 체계(institution structure)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그 조직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이 때 모든 국민이 그 수준에서 생각하는 그것이 표준이 되고, 더 나은 세상으로 가고자 생각하면 그게 또 하나의 모델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믿음이나 생각의 수준에 따라 변화의 방향과 정도나 수준이 결정되는데, 그것은 체계적인 구조가 있고, 또 사람들이 그 변화를 원해야 가능한 겁니다. 원하지 않고 사회의 그냥 어느 정도 하는 수준에 만족하고, 질문하지 않고, 이게 삶의 표준인가 보다 하고 사는 체제와 사회라면, 그 사회는 당연히 혁신을 추구하지도 않을 거란 말입니다. 혁신은 불편한 것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