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지난 5월 10일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강연한 내용이 시사인에 소개됐네요. 뒤늦게 블로그에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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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개봉한 영화 <아이, 로봇>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이 직접 수동으로 운전하는 건 너무 위험해서 안 돼.” 당시만 해도 관객을 웃겼던 이 대사는 어느덧 현실이 되어가는 중이다. 선대인 소장이 강조하는 ‘기술 빅뱅 시대’의 단면이다. ‘알파고 쇼크’로 성큼 다가선 미래, 우리와 우리 아이들은 어떤 진로를 준비하고 어떤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인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5월10일~6월21일 진행하는 ‘행복한 진로학교’를 앞으로 7주간 지상 중계한다.
사회자께서 ‘성층권에 있는 경제문제를 지상으로 끌어내려 쉽게 풀어내는 데 성공한 경제전문가’라고 부풀려 소개해주셨는데, 부담된다. 오늘 주제(‘일의 미래’)를 다루면서 경제문제를 지상으로 끌어내리기는커녕 대기권 밖으로 날려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다(웃음). 그럼에도 미래의 큰 흐름을 이해한 상태에서 우리 아이들의 진로를 준비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자리에 섰다.
ⓒ시사IN 신선영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은 “정형화되어 자동화가 가능한 작업과 관련한 일자리는 기계로 대체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
일의 미래와 관련해 우리에게 지금 밀려오고 있거나, 곧 밀려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파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저성장이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더 심각하다. 과거 고성장 시대에 한국이 추구했던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형 성장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연세 드신 분들은 여전히 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기대하지만, 현실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아무 데나 투자해도 아스팔트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쉽게 돈을 벌고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지금은 다르다. 어린아이가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산악자전거를 타야 하는 것 같은 형국이다.
일의 미래와 관련해 닥쳐올 두 번째 파고는 인구구조 변화다. 인구구조는 생산 및 소비, 일자리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정점을 찍는 게 언제일까? 바로 올해다. 1970~1980년대만 해도 한 해에 70만명 가까이 생산가능인구가 늘어났다. 그 덕분에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소득이 늘어나고 경제 또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주택경기 또한 활발해졌다. 이 시기를 ‘인구 보너스 시대’, 곧 인구가 경제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 시대라 부른다.
반면 앞으로는 인구가 경제에 짐이 되는 시대, 곧 ‘인구 오너스(onus) 시대’가 온다. 생산가능인구는 내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5년 뒤인 2020년에는 한 해 28만명, 2024년에는 38만명 수준으로 감소한다. 이렇게 되면 주택시장도 빠르게 바뀔 수밖에 없다. 현재 수도권 평균 가구원 수가 2.7명인 만큼 28만~38만명이 줄어든다는 건 매년 가구 수요가 10만~15만 호 정도 줄어든다는 얘기다. 일본의 경우도 1991년부터 부동산 거품 붕괴가 시작됐는데, 이것이 회복 불능 상태로 접어든 것은 1996년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접어들면서였다.
ⓒ연합뉴스 울산에 있는 현대자동차 공장. 산업용 로봇들이 차체를 용접하고 있다. |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고령인구는 급증한다. 문제는 이들이 노후에 쓸 돈이 없다는 것이다. 연령대별 경상소득 추이를 보면 50대까지 늘어나던 소득이 60대가 되면 절반 수준으로 꺾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소비가 줄 수밖에 없다. 실제 2012년부터 소비지출은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미 우리는 인구 절벽에 이어 소비 절벽을 맞고 있는 셈이다.
세 번째는 ‘기술 빅뱅’이 가져올 변화다. 기술은 계속 발전해왔다. 그런데 왜 지금이 빅뱅일까? 기술이 가져온 변화의 속도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졌기 때문이다. 전화가 등장해 소비자 5000만명을 확보하기까지는 75년이 걸렸다고 한다. 라디오는 38년, 텔레비전은 13년이 걸렸다. 반면 인터넷은 4년, 페이스북은 3.5년, ‘앵그리버드’는 불과 35일 만에 사용자 5000만명을 확보했다. 과거에는 신제품이 나오면 얼리어답터에서 시작해 점차 소비층이 늘어나다 정점을 찍은 뒤 쇠퇴하는 추세를 밟곤 했다. 반면 지금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처럼 SNS에서 조금만 소문이 나도 소비층이 5000만명, 1억명을 훌쩍 넘겼다가 순식간에 사그라들곤 한다. 말 그대로 ‘빅뱅 디스럽션(disruption:붕괴·파열)’이다.
한국은 ‘로봇 밀도’가 세계 1위
성능이 급속도로 향상되는 데 비해 가격은 떨어지거나 오히려 유지되는 것이 빅뱅 디스럽션의 특징이다. 전기자동차 ‘테슬라 모델 3’가 대표적인 예다. 휘발유로 움직이던 자동차 시대를 완전히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테슬라의 초창기 모델 가격은 7만 달러(약 8200만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올해 초 선보인 테슬라 모델 3 가격은 3만5000달러(약 4000만원)로 뚝 떨어졌다. 더욱이 전기차는 휘발유 차에 비해 부품이 현저히 적은 만큼 유지관리비도 적게 든다.
전기차가 대중화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일단 부품산업은 물론 기존 자동차업계 전반이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화석연료 의존도가 줄면서 에너지산업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 밖에 주유소·정비업체·보험산업·정유산업 등도 영향을 받게 된다. 이렇게 기술·산업·일자리 등을 근본부터 뒤틀면서 판을 재편해버리는 것이 빅뱅 디스럽션이다.
이쯤 되면 여러분이 상상했던 것 이상 아닌가? 미래는 정말 가까이에 와 있다. 변화의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2016년 봄 알파고가 이세돌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우리는 지금 제2 기계시대로 접어들었다. 산업혁명 시기 증기기관이 등장하면서 기계가 인간의 육체적 힘을 대신하던 것이 제1 기계시대라면, 인간의 두뇌와 지적인 능력까지도 대신하는 기계가 등장한 것이 제2 기계시대다. 제1 기계시대에도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나는 등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컸다. 그렇지만 인류는 그 뒤 기계의 생산력을 활용하면서 노동 기준을 만들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등의 방식으로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켜왔다.
제2 기계시대에도 이럴 수 있을까? 낙관적 전망과 달리 비관적 전망도 있다. 제1 기계시대와 달리 기계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일자리가 너무 적어 소득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자본을 소유한 이는 극적으로 부자가 되고 자본을 소유하지 못한 이는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식의 전망이다. 장차 우리가 어떤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지겠지만, 현재까지 흐름으로 보면 일자리가 줄어드는 쪽으로 가는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2만명이 근무하던 공장에 기계가 투입된 뒤 근로자가 100명으로 줄었다는 사례가 상징적이다.
한국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한국의 ‘로봇 밀도’가 세계 1위라는 건 혹시 알고 계시는지. 인구밀도처럼 노동자 1만명당 산업용 로봇 수를 나타낸 것이 로봇 밀도인데, 2012년 한국의 로봇 밀도는 400대에 육박한다. 2, 3위는 일본과 독일. 모두 제조업 강국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2025년 산업용 로봇 도입에 따른 인건비 절감률을 따져본 결과는 더 놀랍다(국제로봇연맹&마켓앤드마켓). 세계 평균 인건비 절감률이 16%인 데 비해 한국은 33%로 압도적 1위다. 한국에서는 노동자보다 로봇을 채용하려는 고용주의 요구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얘기다. 로봇은 말도 잘 듣고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지도 않을 테니까. 이는 다시 말해 고용주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사회적·제도적 저항이 거의 없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뜻도 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위축되는 직업들은 무엇일까? 미국의 기술수준별 고용 변화 추이를 보면 경영, 사업 및 재정 운동, 컴퓨터 및 수학 등 ‘고급 기술 관련 직업’은 1983년 26%에서 2012년 37%로 오히려 약간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기간 보호 서비스, 개인돌봄 서비스 등 ‘저급 기술 관련 직업’도 15%에서 18%로 소폭 늘었다. 반면 줄어든 것은 판매·사무 및 행정지원 등 ‘중급 기술 수준 직업’이다(59%→45%). 곧 정형화돼 있지 않으면서 머리나 육체를 쓰는 작업과 관련된 일자리는 살아남았지만, 정형화되어 자동화가 가능한 작업과 관련된 일자리는 점차 기계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새로 생기는 일자리도 있다. 차량이 필요한 승객과 운전자를 연결시키는 우버나 리프트 서비스처럼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일자리가 대표적이다. 단, 이런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인 데다 안정된 소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일자리가 늘어나는 반면 안정된 중간직 일자리는 줄고 있는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 경제학자들이 집계했다는 ‘향후 10~20년 내 사라지는 직업과 남는 직업’ 리스트도 참조하시라(오른쪽 <표>).
기업에 물어보면 이렇게 변화하는 시대에 가장 필요한 능력은 시간관리, 의사소통, 협업력, 비판적 사고력 등이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미래 세대에게는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팀워크, 리더십 등을 활성화할 수 있는 ‘소프트 스킬’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많이 한다. 이런 능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현행 우리 교육 시스템, 더욱이 사교육 시스템으로는 절대 키울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에 나와보면 누구나 알게 된다. 단 한 가지도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들을 여전히 ‘시험 잘 치는 기계’로 내몰면서 외롭게 경쟁하게끔 독려하고 있다.
투자 대비 효과로 따져도 사교육은 더 이상 아니다. 대기업에서 평사원으로 출발해 임원으로 승진하는 비율이 1.7%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임원이 된 뒤 2~3년 만에 쫓겨나면 일종의 수렴 현상이 일어난다. 너도 나도 통닭집을 차리는 것이다(웃음).
사교육, 과연 투자 대비 효과 있을까
미래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어쩌면 약자의 전략일지 모른다. 사실 강자야 아무 전략이나 선택해도 된다. 사교육비로 월 1500만원 정도는 가볍게 쓸 수 있는 집안이라면 아이를 달달 볶아서 명문대에 진학시키는 게 나름 나쁘지 않은 투자일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한 집안에서 월 200만~300만원을 사교육비로 쓴다? 왜 그래야 하나? 물량 면에서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데.
사교육비를 줄이는 건 우리 노후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OECD 국가 65세 이상 인구의 소득 원천을 비교한 자료를 보면, 핀란드 노인들은 전체 소득 중 공공이전소득 비율이 매우 높다. 복지제도가 잘돼 있어서다. 미국 노인들은 공공이전소득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자본소득 비중이 높다. 기업연금 등을 통해 간접투자를 해온 결과다. 반면 한국 노인들은 공공이전소득과 자본소득 비중이 매우 낮고 근로소득 비중은 상대적으로 높은 특성을 보인다. 50대 초반에 정년을 맞아 통닭집 등을 해보다가 그마저 실패하면 청소부·아파트 관리원 등으로 70대 초반까지 일해야 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니 사교육비로 아이 미래는 물론 우리 노후까지 망치느니, 사교육비를 줄여 우리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10년 더 일찍 자립하게 하시라. 강자와 구분되는 약자의 전략이란 틈새를 찾아내(차별화), 자기가 잘하는 것에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국지전을 벌이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일찌감치 하고 싶은 분야에서 생업을 찾는 것이 나중에 대기업에서 퇴사해 통닭집을 차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능력이 되지 않겠나.
정리·김은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