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도권의 전반적인 집값 하락세가 완연해지자 정부와 한나라당은 각종 집값 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들 정부 수장들과 한나라당의 인식을 보면 현 사태의 문제점을 단단히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노무현 정권 당시 도입한 각종 규제 때문이라는 부동산시장이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때문에 시장에서 정상적인 거래가 일어나지 않고, 조급해진 일부가 급매물을 내놓다 보니 집값 하락 움직임이 나타난다는 식의 인식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인식이 정말 이렇다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집값 거품 형성과 붕괴 과정의 메카니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대출 규제나 건축 규제 등의 영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2007년 이후 일어나는 거래 부진 현상은 기본적으로 부동산 버블이 끝물에 이르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상당한 기간 동안 집값은 높은 상태로 유지되는 반면, 거래량은 급속히 주는 이른바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다. 집값이 높은 고물가 현상과 거래 부진이라는 경기 침체 현상이 부동산 시장에서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이 현상은 부동산 버블의 고점에서 매수자와 매도자간 집값에 대한 기대 차이 때문에 일어난다. 잠재적 매수자들은 집값이 너무 높아져 더 오를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는 반면 잠재적 매도자들은 아직 집값이 더 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매수자와 매도자간 치열한 힘겨루기를 하는 기간이다. 앞에서도 봤지만 이 기간은 투자수익률이 급감하는 단계이므로 잠재적 매도자들은 오래 버티기 힘들다. 특히 빚을 많이 진 사람들이수록 버티는 힘은 약할 수밖에 없다. 집값이 정체된 상태에서 거래가 부진한 기간이 길어지면 ‘경제 체력’이 약한 사람들부터 하나 둘씩 집값을 낮춰 내놓기 시작한다. 매월 이자 부담만으로 몇 백 만원이 눈앞에서 깨지는 상황에서 집값을 낮춰서라도 파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의 매물이 늘면 집값은 더 떨어진다. 다른 사람의 매물보다 싸거나 비슷해야 집을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수자들은 급할 게 없으므로 거래는 여전히 잘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집값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되고 거품의 붕괴가 일어난다. 요약하자면 투자수익율 저하--->매수자와 매도자의 힘겨루기--->급매물의 증가--->집값 하락--->추가 집값 하락--->본격적인 거품 붕괴의 단계로 진행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지금 국내 부동산시장은 전형적인 버블 붕괴 초기의 증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과거 90년대초의 일본이나 지금의 미국에서도 이런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기간을 거친 뒤 버블이 붕괴했다. 일본의 경우 90년 중반부터 부동산 가격이 거의 정체상태에 있다가 92년초부터 폭락하기 시작했다. 반면 택지 거래량은 90년 221만 건에서 92년 182만 건으로 급감했다. 미국의 경우에도 2005년 말부터 서브프라임론 사태가 본격화된 2007년 중반까지 기존 주택 가격이 정체 상태를 보였다. 같은 기간 거래량은 급감했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보면, 대략 1년반~2년 가량의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이 버블 붕괴에 선행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국내의 경우는 어떨까? 2006년말 거래량과 집값이 동반 상승한 뒤 2007년초부터 집값은 주춤하고 거래는 절반 가량으로 떨어져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7년 말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 거래량이 소폭 증가하고 있지만, 이는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앞둔 분양 증가 및 뉴타운 파장, 종부세 회피 매물 증가 등의 이유 때문이다. 특히 6, 7월의 거래량이 다시 줄어든 것을 보면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7년초를 기준으로 할 때 국내 부동산시장도 이미 1년반 가량의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기간을 지난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의 패턴을 고려한다면 향후 어느 순간 국내 부동산 시장의 거품 붕괴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정치적, 정책적 변수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실제로 2008년 5월 이후의 집값 하락 현상은 거품 붕괴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현상이다. 다만 현 정부의 집값 부양 의지에 따라 거품 붕괴가 일정 기간 지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의 경우 정치적, 정책적 요소가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품 붕괴 압력이 국내외에서 점증하는 상황에서 ‘정권의 힘’으로 얼마나 더 오래 지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부에서는 정부와 여당의 부동산 규제 완화 움직임이 본격화하면 집값이 하락세를 멈추고 한 번 정도 더 뛰지 않겠느냐고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기간은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음을 확인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미국의 집값 그래프를 보면, (그래프를 보면 좋은데, 여기에 옮겨올 수 없어 안타깝다)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현상 기간에도 미미하지만 두 차례의 조정과 반등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반등기에 거래량 증가는 동반되지 않는다. 호가 위주의 집값 반등이었던 셈이다. 집값 거품이 극에 이른 것을 알게 되고 추가 대출조차 어렵게 되자 매수자들이 더 이상 거래에 가담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반등 시도가 과거와 같은 대세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집값 거품 붕괴는 시작된다. 국내의 경우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세금 부담을 줄이고 건축규제를 풀어주면 주택 보유자가 좀 더 버틸 여력은 줄 것이다. 미미하지만 짧은 기간 동안 소폭의 반등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권의 힘’에 대한 기대심리 때문에 호가 위주로 반짝 상승하는 것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국면에서 매수세가 따라붙지 않는다면 결과는 뻔하다. 매도자까지 포함해 전 시장 참여자가 더 이상 집값 상승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집값은 급락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볼 때 이명박 정부의 집값 부양책이 얼마나 효과를 볼지, 그리고 다급한 주택 보유자들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다.  

by 선대인 2008. 9. 3.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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