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일본의 유력지인 아사히신문의 서울특파원인 이나다 키요히데 기자가 최근 경제 현안에 대한 저희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해 소장님을 대신하여 부소장인 제가 인터뷰에 응하였습니다. 주제는 한국 부동산 버블의 붕괴 가능성과 이와 관련된 한국 경제 위기론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나다 기자는 이번 인터뷰는 자신들이 준비중인 기획기사의 큰 방향에 대해 저희 연구소의 자문을 듣는 한편 관련 코멘트를 인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나다 기자의 한국어 실력은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말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데는 큰 불편이 없는 듯 했습니다. 약 한 시간 반동안 진행된 이 인터뷰에서 이나다 기자는 크게 네 가지 질문을 했는데, 우선 이에 대한 저의 답변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제 답변은 연구소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음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질문 1. 최근 수도권의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고, 서울 강남과 수도권의 집값이 떨어지는 이유가 뭐냐?


답변 1: 집값이 너무 높은 상태에서 공급이 초과상태다. 이미 2006년 말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모두 66만호가 초과 공급된 상태였다. 2007년부터는 수도권에서도 공급 과잉 상태로 돌아섰다. 현재의 집값 수준에서는 자기 돈이든, 은행 돈을 빌려서든 집을 살 사람은 이미 다 샀다. 그런데도 이미 발표한 광교, 판교, 화성 동탄 등 수도권 신도시에서 대규모 물량 공급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 급등, 경기 위축, 금리 상승 등 국내외 거시경제 환경이 악화되면서 부동산 버블 붕괴 조짐이 가시화되고 있다. 수도권 미분양 물량 증가와 집값 하락 현상도 바로 이 때문이다.


2. 한국의 부동산 버블이 붕괴할 가능성이 있느냐? 버블이 붕괴한다면 가계 부채로 인한 경제 충격이 어느 정도라고 보느냐?


답변 2: 모든 버블은 어떤 식으로든 붕괴하기 마련이다. 십수년간 부동산 버블을 경험했던 일본의 버블도 붕괴하지 않았느냐? 이미 한국의 부동산 버블도 붕괴되는 상황에 진입했다. 그 증거로 미국과 일본에서도 집값 거품이 꺼지기 전에 집값은 높이 유지되는 가운데, 거래량은 확 주는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1년반에서 2년가량 선행했다. 한국에서도 그런 현상이 2007년 상반기부터 나타나고 있다. 또 지금 한국의 은행들은 대출 자금이 부족해 CD와 은행채 발행, 단기 외화 차입 등을 통해 예수금 대비 140%의 초과 대출을 하고 있다. 이렇게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지니 시중금리도 뛰고, 환율이 오르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과거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 직전에도 똑같이 나타났던 현상이다. 이런 현상들을 보더라도 부동산 버블 붕괴는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권이 버블 붕괴를 막는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부동산 버블은 가계 빚으로 쌓아올린 모래성이다. 2001년 340조원이던 가계 부채가 올해 2분기 현재 660조원으로 늘어났다. 증가한 320조원의 60% 정도가 부동산 담보대출이다. 과거 일본의 부동산 버블 때는 상업용 건물을 중심으로 한 기업이 많이 가담했지만, 한국의 부동산 버블에는 가계가 대부분 가담한 것이 차이다. 일본에서는 부동산 버블 붕괴에도 불구하고 가계가 비교적 거뜬하게 버텼지만, 이번에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 한국 가계 경제는 심각한 충격을 겪게 될 것이다. 또 가계 부채로 시작된 경제 충격이 매우 깊고 큰 파장을 장기간에 걸쳐 일으킬 것이다. 적어도 2003년에 있었던 카드채 버블 붕괴보다 몇 배나 더 큰 경제적 충격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3. 한국 정부가 최근 내놓은 '8.21대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 특히 미분양 물량이 늘어나는데 한국 정부가 또 다시 추가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한 이유가 뭐냐?


답변 3: 한 마디로 건설업체들에 대한 종합 선물세트다. 환매조건부 미분양물량 매입은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회사들에게 거액의 금융보조금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추가 신도시 개발 계획은 한국 정부가 얼마나 상황을 오판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지금 미분양 물량이 생기는 것은 공급 과잉의 명백한 징표인데, 현 정부는 노무현 정권의 지나친 규제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등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것이다. 만약 이를 알고서도 추가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면, 이는 한국의 국토해양부 관료들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OECD국가 가운데 건설산업의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들인데, 일본의 토건족과 마찬가지로 건설업체와 건설관료들 사이의 강한 기득권 구조가 형성돼 있다. 특히 국토부 관료들은 자신들의 미래 직장이기도 한 토공과 주공의 통폐합을 원하지 않는다. 국토부가 산하 토공과 주공의 통폐합을 막기 위해 ‘몇 년 후 주택 공급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황당한 논리를 동원해 일거리를 만든 것일 수도 있다. 


4. '9월 위기설'이 도는데 어느 정도 실체가 있는 것이냐?


답변 4: ‘9월 위기설’은 외국인 만기 채권의 대량 환매가 몰린 것 때문에 불거졌다. 물론 기획재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시중에 떠도는 ‘9월 위기설’이 당장 외환위기의 형태로 현실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추후 외환위기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현재 국내의 외환 보유고가 2400억달러가 넘는다고 해도 수백억달러가 미국 연방주택금융공사인 페니메이와 프래디맥에 묶여 있다. 또 한국투자공사(KIC)가 얼마나 손실을 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보유고가 빠르게 줄어 2000억 달러 밑으로 내려간다면 패닉이 발생해 외환 유동성 위기가 생길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지만 말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위기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부동산 버블 붕괴 조짐과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층의 붕괴, 실업률 증가 및 비정규직의 확대, 자산 및 소득 양극화 등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누적돼온 구조적 문제들이 모두 폭발 직전에 있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들이 최근 급격히 악화된 국내외 거시경제 지표들과 맞물려 한꺼번에 극적으로 분출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9월에 당장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 경제에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한국 경제는 모든 문제들이 곪을 대로 곪아 ‘계속되는 위기’에 시달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의 정책 능력이 시대착오적일 정도로 떨어져 경제 주체의 불신을 부르고, 위기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이나다 기자의 질문이 끝나자 동행했던 아사히 지국의 한국인 기자가 한 가지 질문을 곁들이더군요. “많은 이들이 한국의 부동산 버블은 꺼지지 않을 거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즉답을 하는 대신 이나다 기자에게 물어봤습니다. “소위 ‘부동산 불패 신화’는 일본의 버블기에도 만연하지 않았느냐?”고요. 그랬더니 이나다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본에서도 일본의 부동산 버블은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했지만 결국 버블이 붕괴되고 나니 환상이었음이 드러났다”고 답하더군요. 제가 말을 받아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 한국의 ‘부동산 불패신화’도 함께 붕괴할 것”이라고 했더니, 이나다 기자가 표현이 재미있다는 듯 메모를 하더군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나다 기자는 “일본에서는 과거 부동산 버블을 경험했기 때문에 현재 한국의 상황에 대해 관심이 많다”며 “이번 기획기사도 그런 점에서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며칠 안으로 부동산 침체와 미분양 사태가 가장 심각한 대구 지역을 찾아 현장 르뽀를 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도움이 더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말한 뒤 헤어졌습니다.



이나다 기자와의 인터뷰 소감


일본이 과거 부동산 버블을 겪었던 나라인지라 상대적으로 부동산 버블 붕괴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은 것 같습니다. 이처럼 외신들이 한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그만큼 외국인의 시각으로 보기에도 부동산 시장 등 한국 경제 전반의 상황이 위태로워 보인다는 뜻일 것입니다. 현 정부는 ‘경제 위기설’과 관련된 영국 더 타임스의 최근 보도나 일본 니케이 신문의 보도를 과장보도라고 일축합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이를 외국인들의 음모론적 시각으로 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정부로서는 실제로 위기가 있다고 해서 이를 공개적으로 시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무작정 외국 언론의 보도를 과장보도나 음모론적 시각으로 치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도 그렇지만, 영국 더 타임스나 일본 니케이신문 등은 각기 그 나라를 대표하는 언론들입니다. 한국의 언론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언론들입니다. 그런 외국 언론들이 왜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에 대해 잇따라 보도하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반성이 필요할 때입니다. 물론 외신들은 한국의 전반적인 상황을 구체적으로 몰라 때로 엉뚱한 보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너무 익숙해 보지 못하거나 또는 정관언 유착 등을 통해 보도할 수 없는 것을 정직하게 보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외환위기 때 한국 언론은 마지막까지 정부당국의 말만 믿고 외환위기 가능성을 조기 경고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최근 한국 언론의 보도도 그때에 비해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소위 메이저 신문들은 너무 친정부 성향이 강해 더욱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외신 보도를 통해 한국 경제가 외부에서는 어떻게 비치는지를 살펴보는 기회로 삼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부동산문제'란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김광수소장님이 쓰신 글이 아니며 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으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9. 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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