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이 붕괴하면 서민이 더 피해를 본다”며 부동산 부양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이 종부세 완화를 주장하면서 ‘강남의 6억원 이상 주택 보유자는 중산층이라고 했다는데, 혹 이들이 일컫는 서민들은 다주택 소유자들을 의미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본래 의미의 서민을 뜻하는 것이라면, 이 말은 가당치도 않다.

왜 그런가 한 번 따져보자. 집값이 오를 때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다주택 보유자들이다. 부동산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가격 상승이 큰 부동산을 가지고 있을수록 가장 큰 이득을 보기 마련이다.

 

그러면 이때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야말로 무주택 서민이다. 그 다음은 집이 있어도 집값이 거의 오르지 않은 사람들이다. 일반 재화와 달리 주택은 사람들이 소유든, 전세든, 월세든 어떤 식으로든 이용하지 않고 생활할 재간이 없다. 노숙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다른 많은 재화들은 가격이 오르면 사지 않거나 다른 물건으로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집은 그럴 수가 없다. 또 같은 자산이라고 하더라도 주식과 같은 경우에는 주식 투자자들만이 이득이나 손해를 본다. 내가 참여하지 않으면 아무리 주식이 폭등해도 그 혜택을 볼 수 없고, 아무리 폭락해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 하지만 집은 어떤 식으로든 이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따라서 부동산 투기로 집값이 오르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부동산 투기에 가담하지 않더라도 영향을 안 받을 도리가 없다. 특히 집값이 오르면 무주택자들은 집값이 오른 만큼 실질 소득이 감소하는 효과가 생긴다. ‘내 집 마련’ 집착증이 강한 한국인의 경우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하다. 예를 들어, 집값이 두 배로 뛰면 내 집 마련을 목표로 하는 사람의 경우 집을 사기 위한 저축기간이 두 배로 증가한다. 또는 같은 월급으로 두 배를 저축해야 한다. 집값 상승으로 무주택자의 월급이 사실상 감소하거나, 삶의 질이 그만큼 떨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처럼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전체 생활비용 가운데 주거비 비중이 큰 나라에서는 이런 효과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이처럼 집값이 오르면 무주택 서민들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면 집값이 빠질 때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당연히 집값이 오를 때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다. 땅이나 집을 여러 채 가진 부동산 부자들이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 엉터리 언론과 전문가들이 이런 상식을 부정하고 서민이 가장 피해를 본다고 떠들어대니 기가 막힌다. 집값이 오를 때 가장 피해보는 사람들이 왜 떨어질 때도 가장 피해를 보게 된다는 말인가? 서민들은 어떤 경우든 피해보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인가? 중학교 수준의 경제학 상식을 이렇게 되풀이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플 뿐이다. 자기 집이 없는 42%의 무주택 서민이 집값이 떨어진다고 왜 피해를 본다는 말인가? 그리고 집값이 거의 오르지 않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 30%도 집값 하락으로 인한 피해가 거의 없다. 그리고 집값이 많이 올랐던 지역의 주택 소유자라도 원래 자기 집에 살던 사람들 20% 정도는 실질적으로는 피해가 없다. 오를 때 기분이 좋았다가 내릴 때 제 때 못 팔았던 것을 후회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정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투기를 일삼거나 거기에 편승했던 사람들 약 10% 정도, 그 가운데 특히 무리하게 빚을 얻어 다주택을 소유했던 사람들이다. 이렇게 보면 집값이 오르고 내림에 따라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너무나 명확하다.

 

그런데도 ‘버블 붕괴 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게 서민’이라고 떠드는 세력들은 왜 그렇게 말할까? 선의로 해석하자면 버블 붕괴 시 경제적 충격이 동반되니 이때 서민들의 삶이 힘들어진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부풀어 오른 버블이 꺼지는 것은 필연에 가깝다. 버블이 커질 때부터 이미 서민들은 집값 상승으로 인한 상대적 소득 하락뿐만 아니라 이로 인한 내수 위축, 임대료 상승, 양극화 심화 등으로 고통받아왔다. 그렇게 버블을 키워 서민들의 삶을 잔뜩 힘겹게 해놓고도 여전히 버블은 꺼지면 안 된다고 한다면 계속 버블을 키우자는 말밖에 안 된다. 현재의 버블이 유지되거나 더욱 부풀어 오르는 상황에서는 결코 서민들의 삶이 개선될 수 없다. 당초부터 버블을 키우지 말았어야 했지만, 이미 버블이 커졌다면 지금이라도 서서히 버블을 꺼트리는 것이 옳다. 물론 상당 기간 버블 붕괴의 충격으로 고통스럽겠지만, 결국 그것은 버블이 형성될 때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버블이 꺼져야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민을 비롯한 가계 전체가, 그리고 한국 경제 전체가 정상적인 경제 활동으로 돌아갈 수 있다. 따라서 정부와 정치권이 정말 선의로 그런 주장을 했다고 한다면, 실제로는 서민에게 전혀 도움 되는 길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이런 선의로 그런 궤변을 늘어놓는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버블 붕괴 시 가장 큰 경제적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역시 부동산 부자들이다. 서민들의 삶도 어려워지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이 주장은 부동산 부자들을 위해 대놓고 부동산 부양책을 쓰려는 자신들의 진짜 의도를 감추기 위해 동원된 궤변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핑계를 대며 부동산 부양책을 쓰는 것은 매우 사악하다. 정부와 정치권이 서민을 보호하기는커녕 투기자나 부동산 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집값을 떠받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식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투자도 자기 책임 하에 하는 것이다. 집값 상승으로 이익을 볼 때는 부동산 투기자들이 몽땅 차지하게 하더니, 왜 집값이 떨어질 때는 정부 재정과 행정력을 동원해 그들의 손실을 막아야 한단 말인가? 집값 폭등으로 겪는 서민들의 고통을 이렇게 생각하는 정부와 정치권이었다면 지금처럼 거품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동산 부자들을 위한 부양책을 쓰면서 서민을 위하는 척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기만적인 행태는 비열하기 짝이 없다.

by 선대인 2008. 9. 3.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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