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초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중수 OECD대사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후임으로 내정됐다. 얼마 전 기획재정부가 한은의 금통위에 참석해 정부 입장을 설명(?)하는 열석발언권을 행사하겠다고 해 한은의 정치적 독립 논란이 일었다.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수준의 경기회복과 물가 인상 압력에 따른 기준금리 인상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잇따르는데 대한 정부의 한은 압박용 카드로 인식됐다.

 

그런데 이제 현 정권은 후임 한은총재 내정을 통해 이제 직접 통치에 나서게 된 것 같다. 이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김내정자의 내정 직후 첫 황당하기 짝이 없는 첫 발언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은행이) 정치적으로 독립한다는 표현은 맞지만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라며 국가운영의 책임자인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또는 중앙은행 정치적 독립성의 의미를 깔아뭉개고서라도 현 정권에 충성하기 위해 만들어낸 궤변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은의 정치적 독립은 바로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에서 정치적 판단이나 이해관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정권의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제를 채택한 한국에서 한은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말은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을 빼고서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은 바로 정치적 독립의 필요조건인 것이다. 그런데도 김내정자는 이 같은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이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과 한은의 정치적 독립이 마치 별개인 것처럼 황당무궤한 발언을 한 것이다.

 

이 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사실 정부와 중앙은행간의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이 다른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특히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그런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정부와 중앙은행간에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정치적 책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는 다수당에 의해 운영된다. 따라서 정부는 정책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비해 중앙은행은 정권획득을 목적으로 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지니는 집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경제상황에 대해 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견해를 나타낼 수 있는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도 정부와 중앙은행간의 정책적 독립성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한 미국의 사례를 한 번 생각해보자. 지난해 초 오바마정부는 5,000-1조 달러의 관민공동펀드를 중심으로 하는 금융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와 동시에 미 재무성과 연방준비이사회(FRB)는 상호간에 FRB의 정책적 독립성을 확인하는 4개항의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이 합의문은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미 재무성과 FRB간에 중앙은행으로서의 FRB의 독립성과 건전성에 대한 매우 중요한 원칙을 재확인하고 있다. 이 합의문 서두에서 FRB는 금융시장 안정에 대한 책무와 더불어 물가안정과 실업 억제를 목표로 하는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보장받는다고 명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 재무성과 FRB는 이 합의문에서 다음과 같은 4개항의 원칙에 대해 합의를 보았다고 발표했다.

 

첫째, 단기금융시장의 기능을 정상화하고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미 재무성과 FRB는 상호 협력한다.

 

둘째, FRB는 미 재무성이 실시하는 구제금융으로 인해 발생하는 신용위험과 구제금융 책임을 떠안아서는 안 된다. 즉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구제금융의 책임은 미 재무성에 있으며 미 재무성의 구제금융 과정에서 FRB가 대량의 부실자산을 떠안아 FRB마저 신용위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부실금융기관 구제금융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미 정부가 져야 하며 중앙은행인 FRB가 그 책임을 져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셋째, 미 재무성의 구제금융을 위해 FRB 고유의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FRB 통화정책의 본연의 책무는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 재무성의 과도한 구제금융으로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에 심각한 불안을 야기할 경우 FRB의 통화정책은 본연의 책무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넷째, 미 재무성과 FRB는 금융시스템 실패를 방지하는 대책 마련에 있어서 미의회에 대해 양자가 포괄적인 공동책임을 진다.

 

이상의 합의문은 정부와 중앙은행 간의 정치적 책임과 정책적 독립성 영역을 재차 확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과도한 구제금융 과정에서 중앙은행에 부실자산 등을 떠안기거나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한 무리한 양적 통화확대로 대차대조표가 부실화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중앙은행이 그것을 거부한다고 해서 중앙은행에게 정치적 책임을 전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며 그 경우에만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고 중앙은행은 본연의 책무인 물가안정과 고용 안정에 대해서만 정책적 책임을 질 뿐이라는 것이다. 합의문이 최대 1조 달러의 오바마정부 금융안정화대책과 동시에 발표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왜 미국에서 이 같은 합의문을 체결했을까. 그것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어떤 이유로든 훼손됐을 때 어떤 막대한 폐해가 뒤따랐는지, 미국 사회가 똑똑히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실제 국민들의 삶과는 상당히 유리된 지표상의 수치를 통해 자신들의 성과를 과시하겠다는 정치적 탐욕에 빠져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부가 정치적 책임을 지나치게 우선하는 경제정책들을 남발할수록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을 기본책무로 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당하기 쉽다.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독립성은 정치적 책임을 우선하는 정부의 폭주를 견제하는 일종의 자동안정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동안정화 장치가 무력화되면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경제가 혼란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서브프라임론 사태로 촉발된 미국경제의 위기는 부시정부 때에 이런 오류를 범한 결과에 기인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김내정자의 발언은 매우 우려스럽다. 김내정자는 한은도 정부라고 말하고 이를  정책공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정확히 그 같은 인식이 바로 한은의 정치적 독립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인식이 바로 가뜩이나 경제위기의 여파로 고통받고 있는 한국경제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방향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아마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제대로 확보된 선진국에서 중앙은행 총재 내정자가 이런 식의 발언을 했다면 중앙은행 내정자로서 기본적인 자격이 없다며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일부 언론의 문제 제기가 있지만, 대체로 별 문제가 없다는 투다. 이미 대다수 언론이 현 정권의 채찍과 당근에 의해 장악된 마당에 그런 비판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망이다. 다만 한은의 정치적 독립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거나 이를 의도적으로 깔아뭉개는 사람이 한은을 이끌 때 생겨날 경제적 부작용과 혼란이 미리 염려될 뿐이다. 그로 인해 가장 고통받는 것은 이 땅의 서민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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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3. 17. 09:46
 

올 들어 처음 쓰는 글입니다. 늦었지만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새해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 땅의 많은 서민들이 함께 행복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올 한 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인사에서 '일자리 정부'로 자리매김하겠다고 한다. 말이야 좋다. 하지만 현 정부가 말하는 일자리가 안정되고 지속가능한 일자리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지금까지 현 정부가 실제로 실행해온 일자리 창출 사업은 대부분 경인운하나 4대강 사업 등 대규모 토목사업을 통해 만들어내는 '삽자루 일자리'이거나 희망근로사업을 통해 50,60대 이상에게 용돈벌이를 하게 해주는 속칭 '알바'일자리 양산이 대부분이었다. 더구나 현 정부는 전 세계 대부분 국가가 부동산 거품을 일정하게 해소하고 있을 때 오히려 막대한 부동산 투기 조장책을 통해 부동산 거품을 불러일으켰다. 2000년대 이후 거듭되는 내수 침체와 실업난, 비정규직 증가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 시장에 묶인 돈이 생산경제로 흐르지 않은데서 생겨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자리 정부'라는 주장은 헛된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필자가 현 정부의 '일자리 정부' 타령에 코웃음을 치게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실업률 통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이나 고용 사정도 제대로 모르면서 제대로 일자리 대책을 만들 수 있겠는가. 눈 뜬 장님격이 되기 십상이다.

 

오늘자 다음 탑 화면에 걸려 있지만,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실업률과 '사실상 실업률' 또는 '체감 실업률'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사실 정부 공식 실업률은 지난해 내내 3%대를 유지해 극심한 경기 침체 상황 속에서도 거의 완전 고용 상태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20대의 60%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구르고 극심한 취업난과 실업난을 모두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코미디란 말인가.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날까. 한국의 경우 구직활동을 포기한 채 단순히 ‘쉬었다’고 답하는 사람들이나 취업 준비생이나 고시 준비생 등 사실상 실업자로 봐야 할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비경제활동인구에 포함함으로써 실업률이 낮은 것처럼 보이도록 통계를 작성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물론 통계청은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따라 실업률 통계를 작성한다고 하나 통계작성을 위한 조사 당시 대상자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따라 관련 통계수치들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제 통계청이 발표하는 관련 통계들을 통해 현재의 실업률 통계가 얼마나 허구적인지 살펴보자. 결론을 먼저 말하면 통계청이 발표하는 실업률 수치와는 달리 고용사정은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특히 2008년 하반기 이후 본격화된 경제위기로 실질적인 고용사정이 더 한층 악화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아래 <도표1>에서 실업률 추이를 보면 외환위기 이후 사상 최악의 불황 속에서도 줄곧 4% 이내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비경제활동인구 추이를 보면 경기 부침에 따라 실업률보다 더 확연한 증감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제활동인구 대비 비경제활동인구의 비율을 보면 외환위기 여파가 남아있던 2001년 무렵까지는 높은 수준을 보이다가 월드컵특수와 카드채 거품으로 호황을 누렸던 2002년에는 이 비율이 상당히 떨어졌다. 이후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던 이 비율은 경기 침체가 시작된 2008년 하반기부터 다시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실업자로 분류될 사람들을 비경제활동인구로 편입함으로써 통계상의 실업률을 낮은 수준으로 억제하고 있기 때문으로 추론할 수 있다.

 

 

<도표1> 실업률 및 비경제활동인구 추이



(주) 통계청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비경제활동 및 쉬었음 인구는 12개월 이동평균치임



이번에는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쉬었음’이라고 답한 인구수는 2003년 90만명 전후 수준에서 2005년 말까지 꾸준히 늘어나 130만명 전후 수준에 이르고 있는 가운데 2008년 말부터 다시 상승세를 나타내기 시작하고 있다. 사실상 실업자로 분류될 상당수 사람들을 ‘쉬었음’ 응답자로 분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쉬었음’ 응답자 수와 비슷한 추이를 보이는 구직단념자 수 추이도 장기간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구직을 포기한 사실상 실업자들을 자발적 구직단념자로 분류하고 있어 통계상의 실업률을 낮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경기가 악화되면서 사실상 12개월 이상 장기 실업자로 분류돼야 할 사람들 중 상당수를 구직단념자로 분류해 실업자 수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이 OECD 국가들 가운데 장기 실업자 비율을 가장 낮게 유지하는 ‘비결’이자 2002년 이후 장기실업자가 사실상 자취를 감춘 이유로 추정된다.


실업률을 의도적으로 낮추고 있는 증거는 더 있다. 아래 <도표3>을 참고로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취업준비인구 추이를 살펴보자. 취업준비인구는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취업재수생 등으로 사실상 가장 적극적으로 직장을 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업자라고 봐야 한다. 이 같은 취업준비생은 2003년 초 14만명 전후 수준이었으나 이후 상당히 가파르게 상승해 2008년 한 때 40만명 수준까지 육박했다가 2008년 하반기 경기 침체 이후 오히려 소폭 줄고 있다. 이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 영향과 취업준비생 등이 실업자로 분류되거나 구직단념자 등 다른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취업자 가운데도 사실상 실업자인 경우가 적지 않게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래 <도표3>에서 주당 36시간 미만 또는 18시간 미만 취업자 수 가운데 추가 취업희망자 수를 보면 알 수 있다.


<도표2> 실업 및 취업 관련 각종 추이



(주) 통계청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먼저 주당 36시간 미만 취업자 가운데 추가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의 수는 외환위기 여파로 1999년 상반기까지 70만명 수준까지 이르렀다가 이후 가파르게 하락했다. 하지만 2003~2005년 사이 상승한 뒤 2008년 하반기까지 조금씩 하락하던 이 숫자는 2008년 말부터 갑자기 치솟기 시작했다. 2008년 10월 37.7만명에 불과하던 이 숫자는 2009년 3월 62.4만명 수준에 이르렀다. 불과 다섯 달 만에 24.7만명이 늘어난 것이다.


  정도는 다르지만 주당 18시간 미만 취업자 가운데 추가 취업을 희망하는 숫자도 2008년 11월 10.8만명 수준에서 2009년 4월 19.5만명으로 약 8.7만명 가까이 늘어났다. 이는 2008년 말 이후 직장에서 해고된 뒤 이른바 단시간 노동직을 구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부분 실업자’로 봐야 한다. 이는 한국의 실업보험 체계 등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유럽 등 선진국이라면 정부의 실업보험수당 등을 받으며 구직활동을 하는 실업자로 분류될 사람들이 급한 대로 ‘알바’와 같은 일을 하면서 추가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정부는 명목상 취업자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또 취업시간별 취업자 비율 추이를 보면, 전체 취업자 가운데 주당 36시간 미만 취업자 비율이 상당히 가파르게 증가했고, 18시간 미만 취업자 수도 계속 늘고 있다. 반면 주당 54시간 이상 취업자는 2000년대 내내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이는 주 5일제 정착에 따른 효과가 일부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비정규직 및 단시간 근로자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실업기간별 실업자 수를 보면 3개월 이내 실업자 수가 급증하고 있어 통계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로 인해 최근 실업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이상의 분석을 토대로 이번에는 일반인이 느끼는 체감 실업률을 한번 추정해보자. 여기서 체감 실업률이란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상의 실업자에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쉬었음’ 응답자와 취업준비자, 그리고 18시간(또는 36기간) 미만 취업자 가운데 추가 취업희망자를 더한 숫자를 경제활동인구수로 나눈 비율로 정의한다. 이른바 실업의 대상과 범위를 확장하여 일반인들이 체감상으로 느끼는 확장 실업률을 구해보는 것이다. 추가 취업희망자 가운데 18시간 미만 취업자로 한정한 경우를 편의상 체감실업률(1), 36시간 미만 취업자로 확대한 경우를 체감실업률(2)로 정의하겠다.



아래 <도표3>를 참고로 체감실업률 추정치를 보면 2003년 초 10% 미만이던 것이 시간이 갈수록 상승해 2009년 초에는 13~14%대까지 치솟고 있다. 이는 정부의 실업률 통계치가 2003년 초 3.8%에서 2009년 4월 3.8%로 거의 변하지 않고 있는 것에 비하면 완전히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부 실업률과 체감실업률의 괴리는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도표3> 한국의 체감실업률 추정 분석



(주) 통계청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정부 당국이 실업률 통계를 3~4% 수준으로 맞추며 숫자놀음을 하고 있는 가운데 사실상 실질적인 체감실업률은 경제위기로 실업률이 치솟고 있는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과 비슷하거나 상회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 정부는 사실상 실업상태에 있는 인구를 비경제활동인구 등으로 분류하는 식으로 숫자놀음에 가까운 실업률을 내세워 마치 한국이 ‘일자리 천국’인 듯한 착각을 국내외로부터 불러일으키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ILO의 기준을 따른 통계작성법이라고는 하지만 현실의 고용 및 실업사정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것으로 한 마디로 전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극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엉터리 실업통계로 제대로 된 정책을 강구할 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강구한다고 해도 실효성 없는 대책이 될 공산이 크다. 그래서 일자리 문제가 계속 악화되고 있을 뿐 실질적인 해결책이 강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재정을 풀어 인턴제나 희망근로사업 등 일시적인 단기적 일자리를 쏟아내고 있다. 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며 겉으로 드러난 실업률을 낮추는 데만 급급한 대책으로 경제위기로 더 한층 심각해지고 있는 실제 고용사정을 해결하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니 정부의 '일자리 정부' 타령에 시큰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와 언론이 왜곡하는 경제 정보를 꿰뚫어보고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1. 6. 10:00

철도노조가 8일만에 파업을 풀었지만, 정부의 강경 대응 방침은 변함이 없다.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철도노조 파업 7일 째인 2일 직접 한국철도공사(코레일)를 방문한 자리에서 철도 적자가 누적되고 있고 서민 불편도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는 파업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철도노조를 일방적으로 두둔할 생각은 없다. 또 여러 논점 모두에 대해서 다른 전문가들을 제쳐두고 왈가왈부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철도 적자 누적을 노조 파업의 부당성을 강조하는 한 근거로 삼는 것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철도 적자 누적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정부다. 그런데 정부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한 반성은 없이 이를 마치 노조에게 떠넘기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거나 이 때문에 파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왜 그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정부가 한국철도공사에게 인천공항철도를 인수하도록 한 사례이다. 올해 9 4일 철도공사는 인천공항철도를 건설한 현대건설컨소시엄과 함께 인천공항철도를 12,045억원에 인수하기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 동안 인천공항철도 1단계 구간의 수송량이 당초 교통수요예측의 6~7% 수준에 불과해 정부는 이미 개통 첫해인 2007 1,040억원을 보전해준데 이어 2008년에는 1,666억원을 운임수입보조금으로 지급했다. 당초 시설 운영자의 운영수입이 당초 교통수요 예측치를 기준으로 한 수입액의 90%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 차액을 정부가 개통 후 30년간 보장해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인천공항철도 한 사업에서만 연평균 4,610억원, 30년간 13.8조원을 재정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인천공항철도 사업이 혈세먹는 하마로 불리며 언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자 정부는 인천공항철도의 민자투자자 지분 88.8%를 코레일이 12,045억원에 사들이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부는 재정지원 부담을 67,000억원으로 낮출 수 있게 됐다고 선전했다.

 

국토해양부 자료에 따르면 인천공항철도의 총 사업비는 31,375억원이다. 이 가운데는 7,631억원의 국고 지원이 포함돼 있어서 실제로 민자 투자자들은 23,744억원의 돈을 댔을 뿐이다. 따라서 공사에 대한 국고지원비를 포함하면 정부 주장에 따르더라도 모두 74,631억원의 재정을 지출하게 되는 셈이다.

 

반면 참여 건설업체들은 일반적으로 민자사업에서 공사비를 훨씬 더 부풀려 시공비를 책정해 전체 사업비의 40% 이상을 수익으로 가져가는 것으로 분석됐다. 따라서 건설업체들은 전체 사업비의 약 40%에 이르는 1 2,000억원의 수익을 시공과정에서 올렸고, 정부 보조금과 코레일 매각대금 14,750억여원까지 포함하면 무려 26,750억여원의 이득을 본 셈이다.

 

당초 정부는 공항철도사업을 민자사업으로 추진해 마치 재정부담이 거의 없는 것처럼 선전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애초부터 경제성이 없는 사업을 경제성이 있는 것처럼 부풀리고 엉터리로 추진한 탓에 오히려 재정은 재정대로 낭비하고 건설업체들의 배만 불려준 꼴이 된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실패를 감추고 재정부담을 눈속임하기 위해코레일에 떠넘기는 편법을 또다시 동원했다. <도표>를 보면 코레일은 2006년까지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2007년부터 가까스로 순이익을 내고 있다. 하지만 2008년부터 장단기 차입금이 급증해 2009년에는 약 6.9조원에 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천공항철도 인수를 위해서는 거의 전적으로 차입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코레일은 인천공항철도 인수금 등을 포함해 2012년까지 차입금이 9.4조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자체 추산하고 있다.

 

 

<도표> 한국철도공사의 재무구조

 () 공공기관 경영공시 시스템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 한 사례만 보더라도 정부는 건설업체들에게는 엄청나게 퍼주면서 한국철도공사라는 공기업에는 자신들의 정책 실패로 인한 재정 부담을 떠넘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언론에 따르면 정부는 또한 장애인과 노인, 유공자에 대한 운임 할인제와 벽지 노선 서비스 등에 대해 철도공사에 보상하는 비용도 2005~2008년 동안 3104억원이나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는 이처럼 엄청난 정책실패를 통해 국민들에게 막대한 부담을 끼치고 공기업에 떠넘기는 파렴치한 작태를 자행하면서도 책임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또한 이 같은 문제와 관련해서 단 한 사람이라도 책임지는 정부 당국자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현재까지 철도공사의 적자 누적에는 철도공사의 방만한 경영 문제 등 여러 요인들이 함께 작용했다. 하지만 그런 측면에서도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실행해야 할 일은 경찰청장 출신의 낙하산 인사가 아닌 전문 경영인을 기용하고 독립적인 외부 감사를 활용해 한국철도공사의 방만함을 줄이고 경영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그런 일은 선행하지 않으면서도 대통령이 나서 명확한 근거도 없이 불법 정치파업이라는 딱지 붙이기에 여념이 없는 상황은 자가당착이다. 철도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데도 파업을 하고 있는 상황을 비판하려면 적어도 정부가 먼저 자신들의 정책 실패와 그로 인한 재정 부담을 한국철도공사에 떠넘겨 적자 부담을 가중시키는 상황에 대해 먼저 진솔하게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인천공항철도 사업 실패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문책 또한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와 언론이 왜곡하는 경제 정보를 꿰뚫어보고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12. 4. 08:54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예정보다 나흘 앞서 발사대에 장착한 것으로 확인돼 발사일을 앞당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연합뉴스가 오늘 보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북한 문제에 대한 뛰어난 식견을 가진 'yjw23'님이 우리 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에 올린 '직시해야 할 북한 위협의 한계'라는 글을 좀더 많은 분들께 읽히고자 소개합니다. 최근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와 개성공단 폐쇄 사태와 관련한 북한 태도에 대한 훌륭한 분석입니다. ***********************************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은 우주개발의 일환으로 4월 4∼8일 사이에 통신위성을 발사할 것이라고 지난 3월 11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통보했다(ICAO 전문 바로가기). 이에 대해 미국, 일본은 북한 미사일에 대한 요격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남한과 함께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북한은 남한과의 무력충돌을 시사하고 개성공단을 수시로 차단하는 등 남한에 대해서도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의 이러한 북한의 행동에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 남한에 대한 적대정책은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 불이행, 제63차 유엔총회에서 있었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남한의 공동제안, 탈북자 단체의 삐라살포에 대한 남한 정부의 미온적 태도, 키-리졸브(Key Resolve) 훈련 등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예상할 만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해서는 2009년 신년공동사설에서 2008년과 달리 비난을 자제하는 등 오바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어느 정도 나타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행동에 대해 한 보수언론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그렇게도 원하면서 기회를 걷어차는 북한 당국의 처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북한 외교를 총괄하는 두뇌에 고장이 생겼거나 내부 상황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는 판단마저 내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북한이 상당한 강수를 두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시각에 따라서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이 정상적인 대외정책 결정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일정한 한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얼핏 보기에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강경한 자세로 일관하는 것 같지만, 외교정책에 있어서 일정한 목표와 패턴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 같지만 남한과 미국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일정한 차이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개성공단 폐쇄를 살펴보자.

 

북한은 지난 2월 24일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를 통해 '시험통신위성'인 '광명성 2호'를 운반로켓 '은하 2호'로 발사하기 위한 준비를 본격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과 일본은 요격 가능성을 시사했고, 북한은 미국과 일본이 그러한 시도를 할 경우 보복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볼 때 북한은 발사를 감행할 것으로 보인다. 발사를 실행에 옮길 경우 실(失)보다 득(得)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2009년 신년공동사설에 나타난 바와 같이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중동에서 벌여놓은 전쟁을 수습하느라 바쁜 상황이다. 북핵문제 해결을 통한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정책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역시 최근 아시아 순방에서 북핵 관련 질문을 받을 때마다 북한이 검증 가능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한다면 관계 정상화와 국제경제 협력을 비롯한 다양한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는 동일한 대답만을 반복했다. 북한으로서는 답답한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북한의 군사적 능력과 중요성을 부각시킴으로써 미국을 압박하여 북한에 주목하도록 하기 위한 강력한 유인이 존재하는 셈이다. 내부적으로도 최근에 있었던 김정일 건강이상설을 불식시키고 경제력과 군사력을 과시해 체제결속력을 다질 계기가 필요한 상황에서 ‘인공위성’ 발사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또한 전 정부와 다른 대북정책을 펼치고 있는 남한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카드가 된다. 반면 북한이 발사를 실행에 옮길 경우 UN 안보리 결의안 제1718조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다(UNSC 1718 전문 찾아보기). 그러나 조악한 수준이라 할지라도 인공위성으로 판명될 경우 UN 결의안 1718조 적용가능 여부가 불분명하며, 설령 제재가 가해진다 하더라도 현재 북한이 받고 있는 제재의 수준을 감안할 때 추가제재가 북한에 미칠 수 있는 압박은 미미하다 할 수 있다.

 

  결국 북한의 입장에서는 미사일이든 인공위성이든 발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남한을 비롯해 미국이나 일본의 입장에서 인공위성이든 미사일이든 발사한다는 사실 자체가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발사를 시도하는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북한의 발사는 내부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북한의 극단적인 선택의 일환인가, 대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의 하나인가. 

 

  이와 관련해 북한은 다소 이상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시험통신위성인 ‘광명성 2호’를 발사하겠다고 미리 통보한 것이다. 1998년 동해상으로 대포동1호 미사일을 발사할 당시 국제사회에 어떤 예고나 통보도 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국제해사기구(IMO)에 위험좌표를 제시하는 ‘친절’을 베푸는 한편, 인공위성 발사 관련 국제조약에도 가입했다. 이러한 북한의 행동들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와 미국의 요격 움직임을 무력화하려는 명분 쌓기의 일환으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미국에게 일종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로켓발사를 적대적 행위로 간주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결국 북한은 미국의 관심을 끌어 협상력을 높이고, 남한 정부를 압박하며, 대내적으로 체제의 건재함을 과시하려는 등의 목적으로 로켓발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지만, 미국이 이를 공격적인 의미로 받아들이지 말아달라는 사인(sign)을 간접적으로 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북한의 의도를 눈치 채서였는지 미 국가정보국(NI) 국장인 데니스 블레어는 10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발사하려는 것이 인공위성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밝혔으며,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 역시 19일 북한이 현재 일본 오키나와, 괌, 알래스카를 타격할 수 있는 새로운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실전 배치중이라고 밝히면서도 북한에 의한 단기적이고 명백한 도전행위는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역시 북한의 움직임에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북한의 신호를 감지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사태를 이렇게 본다면 최근에 벌어진 북한의 개성공단 폐쇄의 의도와 범위 역시 보다 분명해진다. 즉, 북한이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남북간의 조약을 깡그리 무시하는 행동을 취하고 있지만, 미국을 자극할 정도의 긴장상태를 한반도에 조성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북한은 군 통신선을 절단하고 남북간 육로통행을 금지해 남측인원을 실질적으로 감금하는 등 긴장상태를 조성했으나 키리졸브(Key Resolve) 한미 합동군사훈련(3. 9~20)이 끝나자 이러한 조치들을 해제했다.

 

 

  이와 동시에 북한이 남북교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리를 쉽사리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 역시 알 수 있다. 이는 [도표 1]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남북교역이 늘어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북한이 지난 1년간 이명박 정권을 강하게 비판해왔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의 남북교역량은 18억 2,000만 달러로 2007년의 17억 9,700만 달러에 비해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내용을 보면 보다 흥미롭다. 남한 정부의 대북지원은 2007년 3억 1,900만 달러에서 2008년 6,700만 달러로 약 1/5 수준으로 대폭 감소했다. 이는 남한 정부의 대북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제성 거래와 비결제성 거래를 비롯한 남북 총교역량은 오히려 늘어났다. 이는 남북교역의 관성이 민간영역에 의해 유지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북한이 정부차원의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도 민간차원과 함께 실리를 추구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이 앞으로도 북한이 남북관계에 있어 이와 같은 관성을 계속 유지할 것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번 개성공단 폐쇄는 북한이 개성공단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가 어떤 피해를 입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2009년 1월의 남북교역량이 1억 1,302만 달러로 전년 동월의 1억 4,050만 달러에 비해 약 19.6% 감소한 점 역시 그러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만약 미국과의 관계개선으로 북한이 외화수익원이 다변화된다면 이명박 정부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는 북한이 보다 강경한 수단으로 남한을 압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금까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개성공단 폐쇄조치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북한의 의도를 가늠해보았다. 지금까지 본 바에 따르면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계획하고 있으나 미국 등에 공격적인 행위로 받아들이지 말아달라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미국과의 관계개선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물론 미사일 발사는 여러 가지 의미와 효과를 갖는다). 개성공단에 대한 북한의 의도 역시 일정한 한계와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실리를 취하면서도 남한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동시에, 대미관계에 변화가 생길 경우 위상에 변화가 생길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북한이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을 통해 남한과 미국을 압박하고 있지만, 그러한 압박에는 분명한 온도차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민감한 시점에서는 그러한 온도차를 감지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판세변화를 정확히 읽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은 이미 어떤 그림을 갖고 움직이고 있다. 이에 반해 남한은 원칙고수로 일관하고 한미공조를 근거로 통미봉남 가능성을 일축하는 등 북한과의 소통은 뒤로한 채 현 정부가 내세운 대북정책의 정당성만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필요한 것은 위기의 한계를 명확히 직시하고 상황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위협을 과대평가해서 부화뇌동하거나 우리 정부처럼 원칙론만 내세워서도 안 된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3. 26. 10:55
 

오늘 자 신문들을 받아본 사람들은 주가 폭락, 환율 폭등, 광공업생산 급감 등의 소식을 아마 1면에서 모두 접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내 코스피(KOSPI) 주가지수가 올 2월 초 1,200포인트를 돌파했다가 다시 1,000포인트 근처까지 주저앉고 있다. 이런 가운데 원/달러 환율은 1600원대를 넘보고 있다. 한편 통계청이 2일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 1월 광공업 생산은 저년 동월 대비 약 25.6% 급감해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70년 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광공업생산 증가율이 지난해 10월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11월부터 3개월 연속 사상 최대 감소폭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원/달러 환율폭등과 사상 최악의 광공업생산 급감은 한국경제가 이미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 중병에 걸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달러 환율폭등은 한국경제 붕괴의 시한폭탄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 폭등은 기본적으로 은행의 과다한 외화차입으로 인한 외화 상환 수요와 세계 금융위기 상황 속에서 외국인들의 국내 자산 매각에 따른 외화 수요 등 펀드멘털상의 요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현 정부 출범 초기 경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고환율 기조를 추구한데다, 부동산 버블 붕괴를 막겠다는 무리한 욕심으로 저금리 기조를 지속하는 등 잘못된 정부 정책이 환율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은 원달러 환율폭등의 배경을 설명하려는 글이 아니다. 무관해 보이는 광공업생산의 급속한 감소와 GDP성장률의 급감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환율 폭등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 상관관계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왜 환율이 폭등하면 제조업생산이 급감할까? 환율이 폭등하는 상태에서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 모두가 생산을 중단하게 된다. 기업들은 기존에 확보한 원자재를 활용해서 생산을 하고 있을 뿐, 환율이 폭등한 뒤로는 원자재를 수입해서 채산성을 맞출 수가 없다. 생산하면 할수록 적자가 늘어나는데 어떻게 공장을 돌리겠는가? 더욱이 내수가 빠르게 급강하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같은 환율 폭등으로 인한 생산 정체 현상이 올해 초부터 기업의 본격적인 생산 정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환율 폭등으로 원가 부담을 이기지 못해 생산을 줄이면 대기업도 납품을 받지 못해 가동률을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달러당 원화 환율이 1,000원에서 1,500원으로 급등하게 되면 원자재를 수입해서 생산하는 업체들은 수입원가가 50% 상승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업종에 따라 다소 편차는 있지만 대부분 기업들의 원가구조를 보면 원재료비가 70% 정도이고 인건비는 10%, 물류비 등 기타 관리비가 20% 정도를 차지한다. 따라서 원달러 환율이 40% 이상 오르면, 수입원자재 비중이 전체 원자재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고 가정할 경우 기업들의 원가상승 부담은 20% 가량 증가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가격을 그만큼 올리지 않는 한 채산성을 맞출 수 없게 된다. 더군다나 수출이 둔화되고 내수도 급감하는 상황에서는 기업 연쇄도산과 같은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원달러 환율폭등은 고유가보다도 악성이라고 할 수 있다. 고유가는 에너지절감 노력이나 원화 강세로도 어느 정도 부담을 상쇄할 수 있다. 또한 유가 상승은 원유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기업에만 선별적으로 부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 상승은 금리정책과 마찬가지로 모든 기업에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만큼 악성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원/달러 환율 폭등은 수출기업에도 타격을 준다. 달러 수입물가는 2008년부터 20% 이상 상승하고 있는데 반해 달러 수출물가는 10% 수준 이하에 그치고 있다. 이것은 국내 수출기업이 원자재 달러 수입물가상승을 달러 수출가격 인상에 절반 정도 밖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머지는 원/달러 환율 폭등으로 인한 환차익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제살 깎아먹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달러 수입물가 상승을 달러 수출물가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세계경제 침체로 인해 수출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격을 인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실물경기 불황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원달러 환율을 정상 궤도로 하루빨리 환원하는 것이 최우선 정책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와 정치권은 부동산 거품 붕괴를 억지로 막겠다는 일념 하에 저금리기조를 강조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정부와 보조를 맞춰 큰 폭의 금리인하를 거듭해온 것은 일견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경제 금융위기는 자산경제에서는 자산 디플레에 따른 투자손실 회피와 금융기관 부실에 대한 우려로 투자자와 예금자들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빼가려 한다는데 있다. 뿐만 아니라 생산경제에서는 원/달러 환율폭등을 진정시키는 것이 악성 불황을 막는 가장 시급한 정책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마당에 한국은행이 대폭적인 금리인하를 한 것은 금융기관으로부터 더욱 더 돈을 빼가라는 것이며 원/달러 환율 폭등을 부채질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정책이든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우선순위와 긍정적 효과가 큰 것을 기준으로 정책을 선택하게 된다. 현 국면에서 올바른 정책순서는 금융시장의 신용위기를 해소한 다음에 경기부양인 것이다. 나아가 자산시장의 가격조정을 엉터리 정책 남발로 인위적으로 막으려 하면 할수록 부작용과 혼란만 커질 뿐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환율폭등과 극도의 경기침체는 부동산 거품의 조정을 막으려는 현 정부와 정치권의 무리한 욕심 때문에 증폭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자 한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3. 3. 11:37
 









이명박 정부가 기어코 4대강 하천정비 예산으로 14조원이라는 거액의 예산을 편성해 통과시키는 것을 보고 예전에 썼던 ‘폴 크루그먼에게서 배우는 MB정부에 속지 않는 법(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2083162)’의 내용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폴 크루그먼은 ‘대폭로’라는 책에서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로서 ‘부업(part-time) 저널리스트’인 자신이 생각하는 다섯 가지 ‘보도 준칙(rules for reporting)’을 소개했습니다. 이른바 조지 부시 행정부와 같은 ‘우파 혁명세력’의 정책에 속지 않고 대응하는 준칙이었던 셈인데요. 그는 “이 같은 규칙은 뉴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어떤 진지한 시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했는데, 그 5가지 가운데 이번 사태를 보면서 준칙 1과 준칙 5가 다시 생각나는군요.

 

준칙 1. (이들이 내세우는) 정책안이 그들이 겉으로 내세운 목표에 부합한다고 가정하지 말라.

 

준칙 5. 혁명세력의 목표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마라.

 

특히 준칙 5와 관련한 예로서, 폴 크루그먼은 “끊임없이 이유를 바꿔가며 철저히 감세정책을 밀고 나갔던 부시 행정부에 대해 생각해보라. 온건주의자들의 유화적 대처가 그들의 목적을 끝까지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라크 전쟁은 ‘부시 독트린’의 출발선일 뿐이었다. 결코 제한된 양보로 그들을 달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대운하는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이 말은 확실히 대운하 추진 포기 의사를 밝힌 것이라기보다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잠정 보류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맞았습니다. 그것은 일보 후퇴 작업이었을 뿐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을 통해 대운하는 결국 부활했습니다. 일부에서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은 대운하와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위의 준칙 1과 준칙 5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십시오. 현 정부는 그렇게 순수한 세력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더구나 이명박의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을 지냈고, 핵심 측근이기도 했던 정두언 의원이 이명박과 올해 5월에 나눈 아래 대화를 상기해보십시오.

 

한나라당 안에서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수정해 추진하자는 기류가 일고 있다.

정두언 의원은 19일, “지난 13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한강 개발과 같은 (하천) 재정비 사업으로 우선 추진하고 (강의) 연결 부분은 (나중에) 계속 논의하자’고 건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반도 대운하는 당초부터 명칭이 잘못돼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마치 맨땅을 파서 물을 채워 배를 띄우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그러나 실상은 낙동강, 영산강을 지금의 한강처럼 만들고 나중에 연결부분을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중략) 정 의원의 주장은 운하의 운송 기능을 뒤로 미루고 치수와 하천정비 사업을 앞세우자는 것으로 운하에 대한 거부감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최근 확인된 국토해양부 국책사업지원단의 대운하 추진계획과도 맥락이 비슷하다. 정 의원은 “이 대통령이 ‘그런 방안도 있겠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5월19일자 보도)

 

위에 인용한 기사에서 본 것처럼 이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가 이미 5월에 공감대를 형성한 뒤 이후 대운하를 ‘4대강 정비 사업’으로 말바꿔치기 해서 계속 추진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작정한 것은 국민들의 어떤 가열찬 국민들의 반대에도 온갖 명분과 포장을 동원해서라도 결국 달성하고 마는 집요함에 치가 떨릴 정도입니다.

 

사실은 대운하뿐만 아닙니다. 공기업 민영화든, 영어몰입교육이든, 방송장악 시도이든 모두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사용한 방식은 ‘프레임 바꿔치기’입니다. ‘프레임(frame)'은 <프레임전쟁>을 쓴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문화적 관례나 세상에 대한 믿음, 일을 처리하는 익숙한 방식,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등에 대해 특정하게 구조화된 심적 체계”입니다. 똑같은 현상 또는 사실에 대해 프레임을 어떻게 구성하고 그것을 전달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은 180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직도 이명박을 불세출의 ‘경제대통령’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는 소위 명빠들이 있는 반면, ‘건설족의 수괴’라고 보는 저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감세 정책을 ‘경제 살리기 정책’으로 보느냐, ‘강부자와 특권층을 위한 특혜’로 보느냐, 어떠한 프레임이 우세한 프레임으로 자리잡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지지여부는 확연히 갈리게 됩니다.

 

그런데 대운하가 경제성이 없으며 반환경 사업으로는 비판에 부닥치자, 지금의 집권 세력은 대운하는 쏙 뺀 뒤 4대강 정비 사업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여기에 이재오 류의 사람들은 “이름을 거창하게 대운하라고 한 것이지 사실은 강따라 뱃길을 복원하는 것”이라며 매우 자연스럽고 친환경적인 사업으로 프레이밍을 시도합니다. 그런 식으로 프레임을 바꿔 현 정부는 그들이 당초 계획했던 사업들을 많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어느새 ‘공기업 민영화’는 ‘공기업 선진화’로 바뀌었고, 영어몰입교육은 공정택의 서울교육청을 통해 ‘영어 선도 사업’으로 부활했습니다. 그들의 집요한 방송장악 의도는 ‘방송의 다양성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포장됐습니다. 이들은 이처럼 프레임 바꿔치기의 명수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추진하는 사업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포장만 바뀌었을뿐 그들이 추진하는 알맹이는 사실상 거의 그대로입니다.

 

극심한 경제 위기 앞에서 수많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고, 저소득층과 빈곤층은 빈약한 복지 인프라와 복지 사각지대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14조원이라는 돈을 건설족들의 배를 불리고 자신들 일가친척과 땅부자들이 전국적으로 갖고 있는 토지 가격을 올리기 위해 4대강을 정비한다는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성장 잠재력 향상에 기여하지도, 서민들의 복지 수준을 올리는 일도 아닌,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하는 시대착오적인 ‘삽질’에 돈을 퍼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곧 죽어도 핑계는 서민들을 위한 경기부양이랍니다. 서민들을 위한 경기 부양이라면서 소수 상류층을 위한 각각 수십조원의 부자 감세와 지방 선거를 앞둔 선심성 사업과 건설업체 배불리기 사업으로 점철된 건설토목 사업 예산 편성에만 목숨을 걸까요? 정말 서민들을 위해서라면 왜 서민들에게 직접 지원할 생각은 안 할까요? 왜 항성 서민들은 항상 상류층에 지원한 돈에서 찔끔찔끔 흘러내리는 국물을 얻어마시며 감지덕지해야 하는 신세가 돼야 하는지 그들은 답을 못 합니다. 부자의 돈을 걷어 빈민을 돕는 로빈 훗 정책(소득재분배 정책이라는 게 원래 이런 취지입니다)이 아니라 서민의 돈을 세금이라는 형태로 갈취해 부자를 돕는 ‘거꾸로 로빈 훗 정책’을 펼치는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입니까?

 

현 집권세력은 프레임 바꿔치기라는 얄팍한 수를 써서 민의에 따른 정책 의사 결정이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응당 추구해야 할 공익은 포기하고, 자신들과 자신들 지지세력의 사익을 챙기는데 혈안이 된 골수 기득권 세력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폴 크루그먼이 정의한 ‘우파 혁명세력’의 속성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독재정권의 속성 또한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들이 얼마나 한심하고 무능하고 야비하며 저질스러운 세력인지 꿰뚫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말을 바꿔가며, 프레임을 바꿔가며 국민들을 잘 속여 넘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전체로서의 국민들은 그렇게 순진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12월 15일자 경향신문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난 1년 동안 63.2%의 국민들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평가한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국민들은 지금은 현 정부의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권력 행사 방식 때문에 큰 소리를 못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 안 가서 이들은 민심의 거센 역풍에 호되게 당하게 될 것입니다. 민심이라는 바다 위에 떠있는 배인 정부가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를 때는 난파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배가 난파한 뒤 그 배를 대신할 수 있는 튼튼한 배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건전한 공동체 정신과 공정한 게임 규칙을 토대로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도덕적이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정치세력 말입니다. 그 같은 정치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이 글은 김광수소장님이 쓰신 글이 아니며, 연구소의 공식적인 입장도 아님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2. 17. 08:55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지금은 주식을 살 때”라며 “지금 주식을 사면 1년 안에 부자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발언이 전해져 논란을 낳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이 대통령의 주식이나 펀드 권유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월 1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금융위기설을 부인하면서 “나는 직접투자를 못하지만 간접투자상품(펀드)이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10월 30일 언론사 경제부장단 오찬에서는 “분명한 것은 지금은 주식을 사야 할 때”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이 같은 헛소리에 길게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낮술에 취한 취객의 헛소리에 맨 정신으로 대구하는 것도 정말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몇 가지만은 지적하고 싶다.


우선, 경제에 대한 그의 저열한 인식이다. 그의 거듭되는 발언이나 행태를 보고 있으면 그가 생각하는 경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며 삶의 풍요로움을 느끼는 경제가 아니다. ‘주가 3000간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주가가 올라가면 경제 전반이 좋아진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주가는 일정하게 그 나라 경제상황을 반영하지만 왜곡이 심하다. 다른 모든 분야가 다 죽을 쒀도 일부 블루칩 종목들만 활황이어도 주가는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의 인식에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철학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주가 오르고, 집값 오르면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인식밖에 눈에 띠지 않는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서울시장 시절부터 뉴타운 사업 등으로 강북 집값을 띄워 표를 긁어모았으니 그 근성이 어디 갈까 싶다. 하지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자기와 주변의 삶이 온통 부동산 투기와 한탕 심리로 점철돼 있고, 온갖 편법과 사기 행위로 범벅이 돼 있으니 그 수준에서 무엇이 보이겠는가?


또 한 가지는 그가 국민들을 주가를 떠받치는 호구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발언을 잘 살펴보면 건설사나 부동산 부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책을 내놓을 때는 국민들의 위기감을 자극하는 발언을 내놓는다. 예를 들어, 정부 합동으로 건설사와 은행권의 유동성 지원대책을 발표하던 10월21일 국무회의에선 “총괄적으로 IMF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하다”고 말했다. 또 10월 27일 각종 불요불급한 건설경기부양책으로 점철돼 있는 내년도 예산안을 설명하는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현 상황을 ‘비상시국’으로 규정했다. 또 30일 언론사 경제부장단 초청 오찬 간담회에선 “우리는 끝이 잘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의 입구에 들어와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있은 나흘 뒤에 정부는 대규모 건설경기 부양책과 재건축 규제 완화 등 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무리한 과욕과 잘못된 경영 판단으로 자금난에 처한 건설사나 ‘강부자’들을 돕기 위한 대규모 부양책을 내놓을 때는 그는 스스로 위기설을 강조했다. 건설사나 강부자 지원을 합리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위기감을 조장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런데 일반 국민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다르다. 일반 국민을 향해 나오는 그의 메시지는 ‘위기는 없다. 지금은 조금 어렵지만 주식을 사라’는 식이다. 한 마디로 국민을 호구로 알지 않는 한 이렇게 순식간에 표변하며 정반대 방향의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던지지는 못한다. 나는 이런 발언들이 나름대로 매우 계산된 발언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선의로 생각해도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히 여기는 듯하다.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순진한 일부 국민들을 순간적으로 좀 현혹시켜서라도 그들의 쌈짓돈으로 주가를 떠받치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주가를 떠받치면 누가 좋아지는가? 결국 주식시장에 투자를 많이 한 사람이 상대적 혜택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사고방식에서 과거 일본을 제외하고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거의 매일 연기금을 동원해 대대적 주가부양에 나서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정말 그가 지금은 주식을 사야 할 때라고 믿는다면 대규모 건설 및 부동산 부양책을 하지 말아야 한다. 주가가 실물 경기에 선행하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1년 이내에 주식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이번 경제 위기가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믿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불과 1,2년이면 극복할 수 있는 경제 위기를 위해 왜 엄청난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가며 과욕을 부린 건설사 및 부동산 투자자들을 위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해야 하는가?


지금의 사태를 요약해보자. 2000년대 이후 엄청난 부동산 거품으로 상대적 부유층은 엄청난 자산 가치의 증가를 맛보았다. 이 같은 부동산 거품은 직접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무주택 서민과 저소득층의 부를 상류층으로 전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몇 년 동안 부풀어 오른 주가 거품도 일정하게는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제 그 거품이 꺼지려 하자 정부는 온갖 건설 및 부동산 부양책으로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고, 연기금으로 주가를 떠받치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사용되는 예산과 연기금에는 저소득층을 포함한 국민 모두의 돈이 들어가 있다. 이 돈들을 자기 책임하에 투자한 상대적 부자들의 집값과 주가를 떠받치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일부 순진한 국민들의 쌈짓돈까지 털어 주식에 돈을 넣어 주가를 떠받치라고 꼬드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대통령은 한마디로 파렴치할 뿐만 아니라, 사기꾼 기질이 농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이동풍이겠지만, 대통령에게 요구한다. 앞으로 국민들에게 주식 매입을 권장하겠다면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자신의 말을 믿고 주식 투자를 한 사람들에게 1년 후 시점에서 투자 손실을 볼 경우 선착순으로 자신의 보유 재산을 팔아서 손실 보전을 해주겠다는 각서를 쓰라. 대통령 취임 전 약속했던 재산 헌납 약속을 앞으로도 이행할 뜻이 없는 것 같으니 차라리 이런 데 돈을 써도 좋지 않겠나?


둘째, 당신과 당신 가족, 당신을 따르는 청와대 직원부터 대대적으로 간접상품 가입이라도 하라. 그리고, 그렇게 했다는 것을 국민에게 직접 보여라. ‘지금 주식 투자하면 1년 안에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자신과 자신 가족들부터 대대적으로 펀드 투자를 못할 이유가 없다. 또 그렇게 자신이 강하게 믿는 바를 자기 휘하의 청와대 직원부터 설득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에게 되풀이해가며 권해서는 안 된다.


셋째, 그리고 만약 지금 주식 투자해서 1년 이내에 주식 부자가 되지 못한다면 유언비어 유포죄로 조사를 받을 것임을 다짐해야 한다. 미네르바 등 네티즌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주가나 부동산 가격을 예측한 것을 두고 근거 없는 유언비어라며 수사까지 고려한다고 했던 정부다. 그러면 대통령부터 잘못된 예측을 했을 때에는 똑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이미 이 대통령은 유언비어 유포죄로 수사 대상에 오를 만한 충분한 전력이 있다. 그는 대선 직전인 지난해 12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주가가 내년까지 3000은 간다. 제대로 되면 5000도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주가는 1000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굳이 지금까지 예측의 정확성을 따져본다면 이대통령보다 미네르바나 다른 네티즌들이 훨씬 높다. 솔직히 이대통령처럼 예측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사람은 주변에서 보지를 못했다. ‘747공약’부터 시작해 한 마디로 말끝마다 허황된 발언들뿐이기 때문이다. 백주대낮 취객의 헛소리보다 못한 대통령의 말에 이제 신물이 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라는 사실이 소름끼칠 뿐이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1. 28. 09:31

최근 부동산 거품 붕괴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분양 물량 급증으로 인한 건설업체의 자금난이 심각해지면서 거품 붕괴를 막으려는 정부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온갖 명목을 갖다 붙이지만 한 마디로 ‘건설 및 부동산 경기 부양’과 ‘집값 거품 떠받치기’로 일관한 정책들이다.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한국경제의 펀더멘탈은 괜찮다’고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려왔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부동산 거품 붕괴와 한국 경제의 위기가 현실화하면서 이제는 활용 가능한 모든 부동산 및 건설경기 부양책을 총동원하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국내외 거시경제 구조를 볼 때 현 정부의 이 같은 부동산 부양책으로도 버블 붕괴를 막기 어렵다. 정부가 대출 규제 완화를 제외하고 웬만한 부양책은 다 내놓았지만 부동산시장이 꿈쩍도 않는 게 그 증거다. 그동안 집값 폭등을 주도했던 소위 ‘버블 세븐’의 집값은 정부의 부양책에 아랑곳하지 않고 급속도로 빠지고 있다. 금융기관이 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매물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대출 규제가 풀린다 해도 마찬가지다. 이미 구조적으로 심각한 외화 및 원화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은행이 과거처럼 선뜻 대출을 해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출 연체율이 급등하고 자기자본비율 하락을 겪고 있는 은행권으로서는 제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금융권에서 대출 제한에서 그치지 않고 대출 회수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이처럼 정부의 부동산 및 건설 부양책은 버블 붕괴의 시장 압력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 단지 붕괴의 시간을 약간 지연시키고 부동산 거품을 키우는 부작용만 있을 뿐이다. 집값 거품 붕괴를 부르는 시장 압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에서도 부동산 버블기인 92~95년 동안 무려 70조엔이 넘는 각종 경기 부양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현재 우리 돈 가치로 1000조원이 넘는 예산을 경기 부양에 투입한 것이다. 일본의 경기 부양대책도 일본 토건족들의 요구에 의해 각종 불요불급한 건설 및 토건 사업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극심한 버블 붕괴의 압력을 막지는 못했다. 일본이 92~94년 3년 동안 0%대의 실질경제성장률을 보인 것이 그 증거다.

 

더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정부의 과도한 건설경기 부양책은 장기적으로는 국민경제 전체적인 피해를 키울 공산이 크다. 일본의 경우 버블 붕괴기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으로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건설업체들이 부지기수로 ‘좀비기업’으로 살아남았다. 그 결과 초기의 줄도산 행렬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저술가인 사이토 세이치로씨의 책 ‘일본경제 왜 무너졌나’에 따르면 건설 토목산업 종사 수는 91년 604만명에서 96년에는 676만명으로 오히려 72만명이 늘어났다. 반면 이 기간에 제조업 종사자 수는 1563만명에서 1450만명으로 113만명이나 줄어들었다. 또한 이 기간의 건설 토목관련 업체 수를 보면 60만 2000개에서 64만 7000개로 약 4만5000개나 늘어났다.

 

부동산 거품이 일면 당연히 건설 붐도 일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건설 경기도 죽기 마련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기에는 그만큼 건설시장의 파이가 줄기 때문에 부동산 붐 때 생겨났던 건설업체 수가 감소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오히려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정부의 막대한 공공사업 확대에 힘입어 버블 붕괴기에 더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부 예산이라는 호흡기로 연명하는 좀비기업들이 대폭 늘어났다. 제대로 부실기업의 퇴출이 이뤄졌더라면 살 수 있었던 기업들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좀비기업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건설사의 부실은 계속 증가했고, 결국 금융권의 부실 증가로 이어져 일본의 장기 경기 침체를 가져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세이치로씨는 “90년대의 재정지출이란 이러한 특정산업(=건설산업)의 보호와 지원에 도움이 되었을 뿐이고, 경기의 자율적인 힘을 회복시킨다는 케인스이론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평했다.

 

현재 정부 정책은 과거 일본이 장기 경기 침체로 치달았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부동산 거품기에 네 배 이상 늘어난 건설업체 수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아래의 <도표1>에서 일반건설업체 수의 연도별 추이를 보면, 1995년 2,958개였던 업체 수는 1998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하여 2002년에는 12,643개에 이르렀다. 2003년 이후 건설업체 수는 1만3000개 전후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건설 경기 부양’을 한다는 것은 부동산 거품기 동안 급격히 늘어난 건설업체들을 예산으로 모두 먹여 살리겠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건설사들이 위기론을 떠들어대는 가운데도 건설업계 전체의 부도율은 1.3% 정도인데, 이는 5~7%대의 부도율을 보였던 90년대 중반보다도 훨씬 낮은 비율이다. 부동산 거품기에 잔뜩 늘어난 건설업체들을 국민 경제 전체가 언제까지 먹여살릴 수는 없다. 자신들의 경영 판단 잘못과 과욕으로 빚어진 잘못은 그들 스스로 책임지게 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연착륙론’을 부르짖는다. 필자도 가능하다면 한국 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아무리 필자가 원하고 정부 당국자가 원한다고 한들 이미 그동안 막대한 규모의 악성 부동산 거품을 만들었던 탓에 연착륙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더구나 현실에서 벌어지는 현 정부의 대책을 보라. 연착륙이라는 핑계를 내세우며 그동안 부동산 거품기에 온갖 폭리를 취했던 건설업계와 ‘땅 짚고 헤엄치기’식 수익을 올렸던 금융권에 대한 대대적 부양책을 펼칠 뿐이다. 그들 가운데 자신들의 잘못된 경영판단과 무리한 사업 욕심에 대한 시장의 냉정한 회초리를 맞은 곳이 어디 있는가?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미분양 물량 급증 등으로 부도 위기에 처한 건설사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설업체들에 대해서는 경영상의 자구 노력을 우선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건설업계 전체로 볼 때는 부동산 버블 시기에 한껏 팽창했던 주택 시장이 위축된다면 그에 맞춰 일정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지 않고 정부가 예산으로 먹여살리겠다는 것은 개발주의 시대 당시의 관 주도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미분양 물량의 급증은 건설업체의 터무니없는 고분양가 전략이나 주택 수급 사정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공급 물량을 주먹구구식으로 늘려온 정부의 정책 실패 책임이 크다. 그런 점에서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제대로 된 접근은 외면한 채 정책 실패와 건설업체들의 잘못된 분양 전략이 빚어낸 건설업체의 위기를 국민 세금으로 도와주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지금 국내외의 악화된 경제 상황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은 건설업계뿐만이 아니다. 자영업자와 제조중소기업, 저소득계층 등 우선순위를 가리기 힘들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업계나 계층도 적지 않다. 그런데 굳이 건설업계를 최우선적으로 정부가 도와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진짜 경제적 약자에게는 쥐꼬리만한 예산을 지원하면서, 도덕적 해이에 빠진 건설업계의 복지에 골몰하는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따라서 당장 눈에 보이는 버블 붕괴의 충격을 줄이겠다는 근시안적 시각을 탈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대신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 전체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한편 한국경제가 새로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근본적 체질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 현 정부는 단기 충격을 최소화한다는 명목으로 장래 돌아올 한국경제의 충격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순전히 자신들 임기 내에 돌아올 버블 붕괴의 충격을 최소화해보겠다는 정치적 욕심 때문일뿐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한국 경제가 파탄나는 상황은 피해야 하겠지만, 지금 한국 경제가 글로벌 투자은행들마저 줄도산 위기에 처했던 미국만큼 심각한 상황인가? 미국도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고 나서야 구제금융종합대책을 만들었다.

 

어렵더라도 당분간은 냉철한 시장경제의 가격 조절 메커니즘에 따라 부동산 거품이 자연스레 해소되도록 해야 한다. 부동산 거품에 취해 무리하고 부실한 경영을 해온 건설업체는 명확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자연스레 퇴출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당장은 경제 전체에 돌아오는 충격이 큰 것 같아도 장기적으로 볼 때 국민 경제 전체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다.

 

구체적으로는, 정부가 미분양 물량 매입 등을 통해 억지로 집값을 떠받치기보다는 자산시장에서 정상적으로 주택이 거래되도록 해 집값이 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집값이 일정한 바닥을 찾고 유효수요가 살아나도록 하는 것이 부동산 경기를 가장 빨리 활성화하는 방법이다. 그렇지 않고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떠받치면 거래가 형성되지 않아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길어질 뿐이다. 그런 점에서도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정부에 집값 부양대책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해야 한다. 샤시 업자나 인테리어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거품이 해소돼 시장의 가격 신호에 따라 거래가 일어나는 것이 가장 빨리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는 방법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집값 거품 해소가 늦어지면 부동산 관련 업체들은 모두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수 있다. 또 가계 입장에서도 자꾸 부동산시장의 언저리를 맴돌게 하지 않고 빨리 손절매를 하고 부채를 청산하게 해 정상적인 경제생활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실물 경제를 하루라도 빨리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 부동산에 돈이 묶여 있을수록 실물 경제는 악화되고 이것이 다시 부동산 시장을 더욱 위축하게 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또 부실 건설업체들이 시장에서 퇴출되게 하는 것이 일본의 사례처럼 중장기적으로 볼 때 건설업계와 한국 경제 전반에 돌아오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다. ‘건설업계 복지’에 퍼붓는 예산들은 아껴뒀다가 부동산 버블이 붕괴한 뒤 일정한 시점에서 붕괴의 충격으로 고통받는 가계와 기업들에 대해 원칙과 기준을 정해 도와주는데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자도 정부가 필요한 부양책을 쓰는 것에는 절대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처럼 1% 부동산 부자들과 건설업체들을 위해서 부양책을 쓰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정부의 예산은 지금 경제위기로 힘겨워 하는 중산층과 서민들을 위해 써야 한다. 지금 한 달에 10만원, 20만원이 없어서 냉기가 도는 집안에서 변도 치우지 못하고 사는 빈민들이 수두룩하다. 왜 그런 저소득층에는 땡전 한푼 지원을 늘리지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도로며, 공항이며, 아파트를 짓는데 수십, 수백조원의 예산을 써대려 하는가? 그처럼 막대하게 벌린 대규모 건축 및 토목사업의 유지 보수비 때문에 버블 붕괴기에 일본의 숱한 지방정부들이 파산한 사례를 모르는가? 왜 당장 돈이 필요한 저소득층과 경제위기에 시달리는 자영업자들과 비정규직은 외면하고 실현된 적이 없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 신화'를 들먹이며 부동산 부자와 건설업체 복지에만 정신이 없는가?

 

경고한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쓰는 건설경기부양책은 한국경제를 일본형 장기불황으로 몰아가는 길이다. 또한 겉으로는 공익으로 포장하면서 철저히 자신들과 자신들의 핵심 지지기반의 사익을 추구하다가 정권을 잃은 부시 행정부가 걸어간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부동산문제'토론방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포럼을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1. 11. 09:51

우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폴 크루그먼 교수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는 내가 아는 좁은 세계에서 정말 훌륭한 경제학자이자 양심적인 언론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을 계기로 그가 썼던 ‘The Great Unraveling'라는 책을 꺼내보았습니다. 국내에 ‘대폭로’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책인데요. 제가 갑자기 이 책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부시 저격수’라고 불리는 그의 부시 행정부 비판이 최근 국내 상황에도 적실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약 8개월이 지났습니다. 저는 지난해 대선 결과를 보며 느낀 소감을 한 카페에 띄운 적이 있는데, 그 글의 일부는 이렇습니다.


        “자산과 소득 양극화에 부동산값 폭등, 비정규직 비율 55%, 청년 실업 200만, 출산율 바닥, 자살율과 근로시간, 산재사고 OECD 최고라는 대한민국의 엽기적인 현실과 이를 나몰라라 하는 정치권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쓰레기통을 뒤져서는 안 되잖아요? 현 집권세력이 이 문제를 해결 못한 데 대한 민심의 분노는 이해하지만, 땅바기가 집권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그의 철학과 정책을 보면 오히려 현재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더욱 악화될 것 같군요. 좀 심한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독일이 1차대전의 전쟁부채에 시달리다 결국 히틀러를 택한 장면이 왜 자꾸 오버랩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점에서 그때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면 제가 썼던 글이 그대로 현실이 되고 있느 듯 해 소름이 끼칩니다. 오히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악화된 형태로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정부의 경제 및 교육정책 등 정책 실패와 아마추어적인 정부 운용 등에 대해 비판합니다. 저도 그런 면에서 가장 강력한 비판자 가운데 한 사람일 것입니다. 사실 아마추어도 이만저만한 아마추어가 아니며, 국민들에게 내뱉은 공언을 쉽게 뒤집는다는 점에서 사기꾼 기질도 강한 정부라고 봅니다. 정말 저질 불량정부이지요.


        하지만 저는 어느 순간 이 사람들의 정치 행태 및 국민이나 여론에 대한 대응, 그리고 방송 장악이나 간첩단 조작, 군대의 금서 목록 발표, 건국 60주년 표현, 부유층 위주의 감세정책 등 자신들의 어젠다를 철저히 추구하고 쟁취하는 과정에 더 우려를 느끼게 됐습니다. 많은 이들이 ‘실용정부’라는 현 정부의 구호에 속아 그냥 친기업적이고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는 중도 우파 정도의 정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 정도에 그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과격한 ‘우파 혁명세력’입니다. 물론 지금같은 경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엉터리 저질 집단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것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자신들과 자신들의 지지세력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관철시키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집단이라는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촛불시위 이후 자신들 세력을 결집하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선전포고하듯 하는 이들의 태도를 보면서 점점 이들은 합리적 판단력을 가진 정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찾아 본 책이 "The Great Unraveling"입니다. 

 

        폴 크루그먼은 대폭로에서 조지 부시 행정부를 ‘혁명 세력(A Revolutionary Power)’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처음에 경제 문제에 대해 글을 쓰다가 점점 정치 문제에 대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했습니다. 바로 ‘급진적인 정치 운동이 부상하고 점증하는 지배력을 갖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급진 우익이 백악관과 의회를 사실상 지배하고, 사법부와 미디어의 상당 부분을 통제하게 된 현실에 대해 그는 매우 깊은 우려를 나타냅니다.


        그는 이 같은 생각을 바로 이 책의 도입부에서 구체적으로 정리했습니다. 닉슨 행정부 시절 냉혈적인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박사학위 논문 ‘되찾은 세계(A World Restored)’에서 1930년대의 전체주의 정권들에 대한 유화적 대응책의 실패를 비판합니다. 이때 그는 프랑스의 로베스피에르와 나폴레옹 치하의 정치 세력들을 ‘혁명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1930년대의 전체주의 세력에도 같은 규정을 합니다.


        폴 크루그먼은 헨리 키신저의 이 박사학위 논문을 읽다가 부시 행정부 또한 기존 체제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라는 점에서 ‘혁명 세력’이라고 규정합니다. 이들 혁명 세력들은 오랫동안 확립된 미국의 정치 및 사회적 제도들이 존재해서는 안 되며, 우리들 모두가 당연시하는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정부의 역할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충 등을 단순히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기본적인 (시장경제) 원칙에 위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무력 사용을 전혀 주저하지 않습니다. 미국에 테러를 가한 적이 없는 이라크에 대해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이 대표적이며, 시리아, 이란, 북한 등도 ‘악의 축’으로 묶어 같은 방식으로 다루려 했습니다. 미국 헌법의 근본 원칙 가운데 하나였던 정교 분리를 내팽개치고 ‘성경적 세계관’을 확산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정통성은 민주적 절차에서 나온다는 사상을 받아들이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 나라를 이끌도록 신의 부름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들을 종합하면, 이들 혁명세력이 원하는 나라는 이렇습니다.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이 없으며, 국가의 뜻을 해외에 관철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며, 학교에서 진화를 가르치지 말고 종교를 가르쳐야 하고, 선거는 형식적 치장물에 불고한 나라’ 말입니다.

        

        폴 크루그먼은 감세와 이라크 전쟁을 예로 들어, 이들 혁명세력이 어떻게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는지 설명합니다. 우선, 감세는 90년대부터 공화당의 핵심 의제였습니다. 이들 혁명 세력들은 단순히 감세를 원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미국 조세체계의 분쇄를 목표로 했습니다. 이들은 제한된 승리에 절대 만족할 수 없는 세력입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세수 초과 환급을 명목으로 세금을 깎고, 세수 부족으로 전환됐을 때는 경기 부양책으로 세금을 깎고, 경기 부양 효과가 없음이 드러나자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깎습니다. 이라크 선제 공격론도 90년대초부터 폴 울포위츠, 딕 체니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강화돼 왔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9.11테러라는 현 상황에 대한 대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사담 후세인과 알 카에다의 연계 혐의로 이라크를 침공했다가 그것이 거짓임이 드러나자 이번에는 핵개발 프로그램(대량 살상 무기라는 표현으로 확장합니다만)을 이유로 갖다 붙입니다. 나중에 이것조차도 설득력이 없음이 드러나자 이번에는 ‘민주주의의 확산’을 명분으로 갖다 붙입니다. 감세나 이라크전뿐만 아니라 에너지 정책과 환경 정책, 보건정책, 교육정책 등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모든 경우에 부시 행정부는 그다지 급진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 정책 논리를 제시함으로써 온건주의자들을 안심하게 합니다. 그리고 매번 온건주의자들은 (2차 대전 직전 나치 히틀러에 대해 영국 수상 리처드 챔벌린이 구사했던) 유화주의 전략을 따릅니다. 폴 크루그먼은 헨리 키신저의 통찰이 옳았다며 그의 말을 인용합니다. “안정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혁명세력을 맞닥뜨렸을 때 당시 발생하는 것을 어지간해서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혁명세력을 저지하는데 효과적이지 못했다.”


        이제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한국 상황으로 돌아와 봅시다. 말로는 중저소득층용이라고 떠벌리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부유층을 위한 감세안, 시장친화적인 부유세의 하나인 종부세의 시행 2년만의 유명무실화, 반공 기독교이념에 사로잡힌 철저한 대북 대결 구도 전개(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주인처럼 떠받드는 미국에조차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에서 왕따당하는 얼간이들이죠),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대통령과 소망교회 출신의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힌 ‘강부자/고소용 내각’, 녹색성장을 외치면서 태양광 발전 보조금을 깎고 원전 대규모 건설 계획을 밝히며 대규모 개발사업을 벌이는 반환경정부, 공교육을 사교육화하고, 사교육시장을 극대화해서 어린 학생들을 더욱 치열한 적자생존의 경쟁에 내모는 교육정책, 미분양 물량 매입과 건설 물량 만들기를 통한 ‘건설업자 복지’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기존의 복지 예산은 삭감하는 거꾸로 정책, 종부세, 양도세 경감 등 부동산 부자들을 위한 집값 떠받치기로 일관하는 정책,  민주화 이후 진전돼온 천부인권적, 민주적 권리 및 제도 뒤집기 정책-군의문사위 해체, 국가인권위 압박, 집단 소송제 통한 집회결사의 자유 제한 강화, 인터넷 명예훼손죄 도입 시도, 권위주의정권식 방송 통제 시도, ‘건국 60년’ 표현 통한 헌법에 규정된 임시정부 정통성 부인과 뉴라이트 등 친일우파 집단의 등용, 친일우파적 시각에서 역사 교과서 수정 시도 등등 이루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이게 불과 이들이 집권한지 8개월도 안 돼 벌어진 일입니다. 이를 보면 이들이 한심한 저질 아마추어집단인 한편 자신들의 아젠다는 얼마나 노골적으로, 그러면서도 철저히 추구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이런 형편 없는 저질 정치세력을 정치적으로 심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쨌든 이들이 집권하고 있는 ‘암흑기’입니다. 이러한 시대를 어떻게 해석하고, 견디고, 대처해야 할까요? 폴 크루그먼 교수는 친절하게도 이에 대한 대응법까지 책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로서 ‘부업(part-time) 저널리스트’인 자신이 생각하는 다섯 가지 ‘보도 준칙(rules for reporting)’을 책에서 소개합니다. 그는 “이 같은 규칙은 뉴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어떤 진지한 시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같은 규칙은 현재 한국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다섯 가지를 간략하게 소개해보겠습니다. 각각의 준칙에 해당하는 국내 사례를 제가 몇 가지 정리해봤습니다. 댓글을 통해 다른 분들이 의견을 달아주시는 것도 좋겠군요.

 

준칙 1. (이들이 내세우는) 정책안이 그들이 겉으로 내세운 목표에 부합한다고 가정하지 말라.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으며, 그 목표를 추진하기 위한 어떤 주장도 서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한 기자가 백악관 보좌관이 공개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에서 한 사안에 대해 정반대로 말한 것에 대해 해명하라고 하자, 그 보좌관의 답변은 이랬다. “왜 거짓말하느냐고? 그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야. 언론에 거짓말하는 것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전혀 받지 않아.”


한국 사례: 철저한 부유층을 위한 감세안에 대해 중저소득층의 경제활력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 처음에 영어몰입교육 내세웠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영어몰입교육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했으나, 서울시교육청을 통해 단계적으로 추진중.


준칙 2. 이들의 진정한 목표를 발견하기 위해 공부 좀 하라.

부시행정부는 감세안을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포장했지만, 단기적으로 감세안이 일자리 창출 수단으로 널리 인정하는 어떤 경제학 이론도 없다. 경제 성장은 사실 그들의 목표가 아니다. 급진 보수파들은 자본에 대한 모든 과세를 없애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그것이 이 정부의 감세안이 실제로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정책을 이해하는 방법은 그들이 대중들에게 그들의 계획을 선전하기 전에 이들 정책의 기획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정부에서 전직 목재 산업 로비스트 출신이 산림정책을 총괄할 때, 그 관리가 ‘건강한 산림’이라고 하는 말은 벌목 회사들이 더 많은 나무를 베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런데 저널리스트들이 이런 문제를 다루는 것은 어렵다. 그들은 (급진 보수파의 진정한 의도를 드러내 강력히 비판함으로써) 편향적인 엉뚱한 음모이론가처럼 비치길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이 충분히 공개돼 있는 상황에서 어떤 음모가 개입돼 있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더 비현실적이다.


한국 사례: 이명박 정부는 여론 조작을 위해 노골적으로 방송장악을 시도하고 있으나, 이를 언론의 편향성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주장. 최근의 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이나 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한 건국 60주년 표현 사용도 마찬가지. 


준칙 3. 일반적인 정치 규칙이 적용될 것으로 가정하지 마라.

워싱턴정가에서는 스캔들이 일어나면 언론이 떠들어대고 관리들은 사퇴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 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내무성 차관으로 일했던 석탄산업 로비스트인 스테펀 그릴은 예전 고객을 위해 개입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육군참모총장인 토마스 화이트는 엔론 경영진 시절 가공 이익을 만들어낸 사실이 밝혀졌지만 유임됐고, ‘이해충돌’ 사실이 드러난 국방정책자문위 의장인 리처드 펄도 마찬가지다. 왜 이런 일반적인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가? 기존 시스템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이들 혁명세력들은 규칙에 따라 경기를 펼쳐야 한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사례: 언론장악대책회의를 열었던 최시중이나 이동관 유임, 땅투기와 표절 논란된 청와대 수석들과 장차관 대부분 그 자리에 있음. 자신들이 야당이었던 시절 같은 기준으로 사퇴 총공세를 펼쳤던 기준을 자신들에게는 적용 안 함. 하긴 법을 밥 먹듯이 어긴 범법자 대통령 밑에 있는 충복들이 조그만 스캔들에 움찔이나 하겠습니까?



준칙 4. 혁명세력은 비판에 대해 공격으로 반응한다.

혁명세력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다른 이들이 비판할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의문을 제기하는 누구든 무자비한 역공을 받을 것을 기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2003년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선두주자였던 존케리가 “이라크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고 한 말을 두고 공화당측은 “전시에 군통수권자의 교체를 요구했다”며 그의 애국심을 문제삼았다.


국내 사례: 촛불집회 유모차 부대까지 처벌, 조중동 광고 불매 운동 주도자 처벌, PD수첩 보도 제작자 징계 요구 및 검찰 수사 의뢰. 자신들이 더욱 이념적이면서 최근 경제위기까지 좌파 이념세력의 공세로 치부, 간첩단 사건 조작.


준칙 5. 혁명세력의 목표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마라.

끊임없이 이유를 바꿔가며 철저히 감세정책을 밀고 나갔던 부시 행정부에 대해 생각해보라. 온건주의자들의 유화적 대처가 그들의 목적을 끝까지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라크 전쟁은 ‘부시 독트린’의 출발선일 뿐이었다. 결코 제한된 양보로 그들을 달랠 수 없다.


국내 사례: 방송장악 과정에서 YTN 낙하산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KBS로, 이제 신문방송 겸영 통한 조중동 특혜 주기와 MBC민영화 시도까지 나아가고 있는 행태.


 

물론 미국의 상황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맞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니 어찌 보면 미국에 비해 한국의 여건은 훨씬 비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거의 대다수가 민주당이나 무당파 성향으로 서민 복지 강화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반면, 한국의 엘리트들은 대부분 우익 성향에 한나라당 지지자들입니다. 미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제대로 된 신문들이고 찌라시 언론들인 폭스뉴스 등은 주류라기 힘든 반면 한국에서는 찌라시 신문들이 가장 영향력 있으며, 이런 찌라시 관점을 방송에까지 도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부시행정부에서 미국에는 민주당이라는 매우 강력한 야당이 있었으나, 지금 한국에는 존재감과 정체성마저 희미한 민주당과 소수 정당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의 상황은 더욱 암울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희망도 있다고 봅니다. 지금의 한국 정부는 훨씬 더 엉터리 정부여서 대중들이 그들의 진정한 목적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 더구나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을 제대로 대처할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고요. 또한 조중동 등 주류 신문들의 거짓말이 들통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반면 20, 30대 젊은 세대들을 주축으로 인터넷상의 집단지성을 통해 진실을 깨달아가고 있다는 것일 겁니다.


저는 소위 친노도 아니고, 지금의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같은 정치세력들에서 희망을 보지도 않습니다. 지금의 시대착오적 이념에 빠져 있는 엉터리 급진 보수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서민들을 착취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분노할 뿐입니다. 그리고 기득권 중심의 불공정한 게임의 룰이 적용되는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와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폴 크루그먼이 책에서 인용한 구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CBS의 60분 진행자인 앤디 루니의 말인데요. “단 하나의 진정으로 좋은 뉴스는 미국역사에서 이 끔찍한 시간이 끝나는 것”이라고요. 저는 이 말에 조금 살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단 하나 진정으로 좋은 뉴스는 한국 역사에서 이 끔찍한 시간이 끝나는 것, 그리고 정말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할 역량이 있는 정치세력이 성장해 집권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토대를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by 선대인 2008. 10. 14. 07:57

서울시 뉴타운 사업의 정치경제학

기사입력 2008-06-25 10:31
[신동아]

이명박 대통령은 18대 총선 투표일을 불과 나흘 앞두고 서울 은평구 뉴타운 건설현장을 찾았다. 당시 강북 지역의 뉴타운 기대 심리를 자극하기 위한 행보가 아니냐는 공격을 받았다.

“뉴타운 문제는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보다 앞으로 서울시 당정회의를 통해 수시로 보고하고 논의하는 것이 좋겠다.”(한나라당 뉴타운긴급대책소위 위원장 정태근)

“앞으로도 계속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자.”(오세훈 시장)

5월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나라당 서울시당 당정협의가 끝난 뒤 언론에 보도된 발언이다. 이날 당정협의에는 한나라당 서울 지역 국회의원 당선자 및 당협위원장 35명과 오세훈 서울시장 및 서울시 고위 간부들이 참석했다. 이날 보도 내용만 보면 뉴타운 선거공약 논란으로 촉발된 양측의 갈등은 일단 봉합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울 지역 유권자들의 초미의 관심사인 데다 여전히 양측의 의견 차가 커 갈등은 언제든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이날 한 참석자는 “당정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한때 분위기가 삭막해졌다”고 전했다. 서울시가 미리 준비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울시의 뉴타운 추진 방향에 대해 설명하자 뉴타운긴급대책소위 위원장인 정태근 18대 국회의원 당선자(성북 갑)가 “뉴타운 사업의 부정적 효과만 너무 강조하는데, 뉴타운 사업에 대한 서울시의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다른 당선자들도 정 당선자의 발언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는 전언이다. “그동안 소외됐던 강북지역 집값이 조금 뛴다고 마치 큰일 나는 것처럼 난리를 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도 나왔다는 것.

정치적 계산에서 탄생한 뉴타운

강남북 균형발전과 주거환경개선을 목표로 추진돼온 뉴타운 사업이 왜 이처럼 격한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것일까. 이는 뉴타운 사업이 치밀한 도시계획 및 엄밀한 주거정책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강북 주민의 표심(票心)을 얻기 위한 정치적 계산에서 탄생한 데서 비롯된다. ‘강북뉴타운 건설’은 청계천 복원사업과 더불어 이명박 대통력이 서울시장 취임 초부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 핵심사업이었다.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강북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것을 사업 취지로 내세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지역 발전에 목마른 강북 주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표 계산이 있었다.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두고 ‘보이는 실적’으로 승부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은 서울시장 재임 동안 뉴타운 사업에도 적용됐다. 일부 소외 지역을 번듯한 주택단지로 바꿔놓을 경우 ‘전시효과’를 통해 다른 지역 주민들의 표심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이 때문에 뉴타운 사업은 청계천 복원 사업과 더불어 현대건설 CEO 출신인 이 대통령이 시장 재임 초기부터 강력한 승부수를 던진 사업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2002년 10월 은평, 길음, 왕십리 3개 지구를 시범 뉴타운 지구로 지정했다. 이 대통령의 시장 취임 불과 4개월 만이었다. 이들 3개 시범지구에 투입한 시 재정만 1500억원가량에 달한다. 특히 이 가운데 은평뉴타운 지역은 이 대통령이 뉴타운 사업의 ‘모델 케이스’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인 지역이다. 이 지역은 낡은 주거지역을 재정비해야 하는 다른 뉴타운 지역과 달리 그린벨트 해제 지역 등을 개발하는 것이어서 사업 속도를 높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 대통령은, 다른 뉴타운과 달리 은평뉴타운을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SH공사를 통해 공영 개발했다.

은평뉴타운 사업의 임기 내 가시화를 목표로 하다 보니 무리수가 뒤따랐다. 사업을 서두르면서 과다한 토지 보상비를 지급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고, 은평뉴타운의 입찰 방식으로 아파트에는 적용된 사례가 없던 턴키 방식을 택한 것도 문제가 됐다.

턴키 방식은 외국에서 공장 등 유형화한 건축물을 반복 설계 없이 빠른 시일 안에 시공, 납품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주로 기술 및 설계의 창의성을 활용하고 공기를 단축한다는 취지로 시행돼왔다. 문제는 이 방식이 높은 설계비용 때문에 사실상 상위 6대 건설업체들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가격 경쟁입찰 방식에 비해 20~30% 이상 많은 사업비가 든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턴키 방식은 주로 지하철이나 터널공사, 장대(長大) 교량 등의 공사에 적용됐을 뿐 아파트 시공에는 도입된 적이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4월28일 서울시청에서 한나라당 ‘뉴타운 긴급대책 소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만나 총선 이후 불거진 뉴타운 추가 지정 논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이 은평뉴타운에 턴키 방식 적용을 고집한 것은 왜일까. 우선 공기 단축이 이유로 지적된다. 턴키 방식은 기본설계를 확정한 다음 시공업체를 선정하는 다른 입찰 방식과 달리 설계와 시공을 한꺼번에 입찰에 부치기 때문에 공기가 단축된다. 4년 임기 내 사업 가시화를 바란 이 대통령으로서는 눈여겨볼 대목이었다. 또한 주거환경 개선 효과를 ‘전시’할 목적으로 고급 브랜드 아파트 업체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일반 경쟁입찰 방식의 경우 삼성, 현대 등 고급 아파트 브랜드 업체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 이명박 시장이 고가 브랜드 업체를 유치하기 위해 턴키로 가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논리에 떠밀려 35개로 확대

시범 뉴타운이 확정되자마자 뉴타운은 또 한번 정치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각 지역의 민원이 빗발치기 시작한 것. 주민들의 욕구를 대변해 각 구청장과 시의원들을 중심으로 뉴타운 추가 지정 요구가 쏟아졌다. 서울시장실 주변은 뉴타운 사업과 관련한 구청장 등 면담자들과 지역 민원인들로 붐볐다.

이때부터 이 대통령도 자의 반 타의 반 떠밀려 갈 수밖에 없었다. 당초 3~5곳만 지정하려 했던 뉴타운지구가 결국 12곳까지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우리 지역도 열악한데 왜 어떤 지역은 해주고, 우리는 안 해주느냐”는 목소리를 외면하기 어려웠던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이 대통령은 뉴타운지구와 균형발전촉진지구 지정 기준의 하나로 ‘권역별 형평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모든 지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으니 권역별로 안배하겠다는 뜻.

하지만 뉴타운 사업 지정만으로 집값이 껑충 뛰는 현실을 목도한 다른 지역 주민들이 잠자코 있을 리 없었다. 대권 도전을 앞두고 표를 염두에 둔 이 대통령으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요구였다. 이렇게 해서 서울시는 2003년 2차 뉴타운 12곳과 시범 균형발전촉진지구(이하 균촉지구) 5곳을 추가로 지정했다. 이후 사업 대상지가 확대되고 추가 지정을 요구하는 민원이 계속됨에 따라 서울시는 2005년 6월 뉴타운 특별법 제정을 건의하게 된다.

뉴타운 사업의 정치적 효과를 알게 된 국회의원들도 ‘뉴타운 특별법’ ‘도시구조개선 특별법’ ‘도시광역개발 특별법’ 등 3개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했다. 이후 국회는 3개 법안을 통합해 ‘도시재정비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마련, 그해 12월 법안을 통과시켰다. 서울시는 그 사이 다시 3차 뉴타운 10곳과 2차 균촉지구 3곳을 추가로 지정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한 뒤 지정된 세운균촉지구 등 2곳을 합해 당초 3곳으로 출발한 뉴타운 사업은 모두 35곳으로 대폭 늘어나게 됐다. 총 사업대상지는 27㎢로 약 720만평. 서울시 전체 면적의 약 5%에 이르는 규모다.

“사업지 주변지역까지 합하면 전체 가구의 15% 이상이 영향을 받게 되는 서울시 창건 이래 최대 규모의 역사(役事)”라는 게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장영희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서울시가 수십년간 추진해온 주택재개발사업 면적보다 더 넓다. 서울시의 한 간부는 “처음부터 이 사업은 한번 시작하면 도중에 발을 빼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며 “당시 이명박 시장도 이 정도까지 사업이 커지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평뉴타운 전격 방문에 담긴 뜻

이런 과정을 염두에 둔다면 이번 총선을 전후해 불거진 뉴타운 공약(空約) 사태도 결국 터질 게 터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상당수 낙후지역이 뉴타운으로 지정되자마자 집값이 뛰는 것을 지켜본 다른 낙후지역 주민들에게 뉴타운은 지역개발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주민들의 이러한 개발 기대감을 ‘한 표’가 아쉬운 후보자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 후보 각각 20여 명이 뉴타운 추가 공약을 내걸었다는 점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뉴타운 추가 지정 권한이 있는 오세훈 시장을 활용한 여당 후보자들이 단연 유리했음은 물론이다. 더구나 뉴타운을 시작한 사람이 이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뉴타운 공약은 처음부터 한나라당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선거 막판 이 대통령이 자신이 재임시절 공들여 추진했던 은평뉴타운을 전격 방문한 것도 여당 후보들에 대한 지원사격 성격이 다분했다는 게 중론이다. 뉴타운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정권 차원의 의지를 유권자에게 과시하는 이벤트였다는 것.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 대통령의 은평뉴타운 방문 시점 이후 박빙 지역 유권자 상당수가 여당 후보 쪽으로 움직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뉴타운 지구로 지정된 지역의 원주민 재정착률은 17% 수준에 불과하다. 사진은 2006년 서울 성북구 월곡1동 재보궐선거 유세장. ‘재정착 없는 뉴타운 전면 재검토’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실제 선거 결과도 이 같은 추정을 뒷받침한다. 민주당의 아성으로 불리던 ‘강북 3구’인 강북, 노원, 도봉구는 이번 총선에서 모두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 이들 지역의 야권 후보들은 대부분 선거 막판까지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앞서다가 졌다. 이들 지역은 모두 한나라당 후보들이 뉴타운 공약을 내건 곳이다. 통합민주당이 뉴타운 개발 공약과 관련 있는 서울시내 9개 지역구에 대해 여론조사를 한 결과 응답 유권자의 66%가량이 “뉴타운 공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한다. 통합민주당이 선거 후 뉴타운 공약을 두고 발끈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점은 그냥 묻혀 지나갈 수도 있었을 뉴타운 공약 논란에 불을 댕긴 이가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시장이라는 점이다. 오 시장은 선거 닷새 후인 4월14일 P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요즘처럼 강북 부동산 값이 들썩이는 시점에서는 절대 뉴타운 추가 지정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오 시장은 민주당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소속 당선자들에게서도 거센 항의와 비난을 들어야 했다. 오 시장 발언이 보도된 뒤 “선거 때는 당장 뉴타운이 될 것처럼 떠들더니 어떻게 된 거냐”는 유권자들의 항의가 한나라당과 각 지역구 당선자 측에 빗발쳤다고 한다. 서울지역의 한 당선자 측은 “그런 전화를 받고 가만 있을 정치인이 있겠느냐”며 “최소한 오 시장을 윽박지르는 모양새라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오세훈 ‘뉴타운 소신’의 배경

그러면 오 시장은 ‘당분간’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왜 그렇게 서둘러 뉴타운 추가 지정 불가를 밝혔을까. 서울시는 “오 시장이 평소 일관되게 밝혀온 원칙을 선거 이후 맨 처음 잡힌 인터뷰에서 재확인했을 뿐인데, 야권이 정치공세를 통해 부각시켰을 뿐”이라고 해명한다. 또한 2년여 동안 서울시를 담당했던 한 기자는 뉴타운과 오 시장의 ‘인연’을 들어 설명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취임 초기, 행정경험이 전무한 오 시장이 서울시 행정 전반을 잘 이끌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시 간부들 사이에 적지 않았다. 전임 이명박 시장 때부터 서울시를 출입한 기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는 계기가 있었다. 바로 2006년 가을의 ‘은평뉴타운 고분양가 논란’이었다. 사실 은평뉴타운 고분양가는 고급 주거 단지화를 목표로 일을 추진한 이명박 전 시장의 책임이 컸다. 하지만 언론은 ‘서울시가 고분양가를 통해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고 썼고, 여론의 비난은 오 시장을 향했다.

오 시장으로서는 억울했을 법도 한데, 긴박하게 움직여 사태를 반전시켰다. 그 사건을 계기로 80% 공사 뒤 분양하는 후분양제, 분양원가 공개를 시작으로 서울시 주택정책의 물꼬를 확 바꿔놓은 것이다. 이후 뒤따른 장기전세 주택정책 등을 통해 기존 주택정책과는 확연히 다른 해법을 내놓았다. 이때부터 서울시정에 대한 오 시장의 장악력이 커졌다는 게 중론이다. 이를 계기로 구축된 ‘오세훈표 주택정책’에 대한 오 시장의 자부심과 애착이 상당하다. 또 ‘서울시가 손을 대 부동산값이 오르면 큰일 나겠구나’ 하는 교훈도 얻었을 것이다.

총선 직후의 인터뷰 내용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공직자로서 선거기간 중 후보들의 공약을 놓고 의견을 표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자당 후보들이 곤혹스러워할 발언을 하기가 쉬웠겠는가.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총선을 전후로 강북 집값이 급등한 데 대한 위기감이 컸을 것이다. 은평뉴타운 때 호되게 당한 경험 때문에 강북 집값이 더 뛸 경우 덤터기를 쓸 수 있겠다고 봤을 수도 있다. 시간이 더 지나면 강북 집값이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지 않았을까.”

이렇게 점화된 뉴타운 공약 공방으로 오 시장은 통합민주당으로부터는 ‘여당 후보들과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벌였다’는 의혹을, 한나라당 일부 당선자들로부터는 ‘자당 후보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는 원성을 사게 됐다. 협공에 시달리던 오 시장은 4월21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권의 왈가왈부에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며 여야 정치권의 공격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면서 기존 뉴타운 사업이 상당히 진척되고 집값이 안정돼야 한다는 두 가지 전제조건을 내세우며 당분간 뉴타운 추가 지정을 하지 않겠다고 재확인했다. 이와 함께 집값 폭등, 낮은 원주민 재정착률, 아파트 일변도의 주거 유형 등을 기존 뉴타운 사업의 문제점으로 거론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주거환경개선 정책자문단’을 구성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는 한동안 계속됐다. 민주당은 4월28일 뉴타운 공약과 관련, 정몽준 의원 등 한나라당 당선자 5명과 함께 오세훈 서울시장을 선거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한나라당 당선자들의 오 시장 압박도 계속됐다. 정몽준 의원은 “뉴타운을 안 한다고 하면 직무유기”라고 했고, 홍준표 의원은 “뉴타운 추가 지정을 안 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지정권을 국토해양부로 이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유정현 당선자처럼 “다음 시장선거에서 공천을 안 줄 수도 있다”는 이도 나왔다.

정치권의 뉴타운 추가 지정 요구는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이를 따져보려면 뉴타운 사업의 실태부터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직접 다녀온 은평뉴타운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원주민들은 떠나고…

5월8일 서울 은평구 수색동 수색뉴타운 6구역. 수색기차역 삼거리에서 은평터널로 이어지는 왕복 2차선 도로 주변에는 수십년 된 낡은 저층 상가들과 단독 및 다세대 빌라 등이 늘어서 있었다. 조그만 식당들과 술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선 모양새는 이 지역의 시계가 1980년대쯤에서 멈춰서 있음을 느끼게 했다. 반면 경의선 기찻길 건너편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에는 막 지어진 초현대식 고층 건물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 건물들의 뒤로는 몇 년 전 들어선 상암동 아파트들이 병풍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기찻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30년쯤의 시차가 있는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했다.

수색-증산 뉴타운지역은 4월22일 서울시로부터 재정비 촉진계획안을 승인받았다. 주민들의 기대는 컸다. 6년 전 이곳으로 이사왔다는 주민 김용준(66·자영업)씨는 “이 지역이 낙후돼 있고 주거여건이 좋지 않아 불편했는데, 뉴타운사업이 본궤도에 오른다니 기대된다”고 했다. 그는 뉴타운 건설이 완료되면 40평형(132.24m2)대의 주택을 분양받아 입주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건너편 상암동 아파트보다는 좀 싸더라도 최소 7억~8억원은 가지 않겠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근 수색시장에서 만난 양정임(58)씨는 뉴타운이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세로 살고 있는 18평 빌라의 전세가가 불과 4~5년 사이에 40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두 배나 뛰어올랐다는 것. 양씨 내외가 시장 노변에서 분식 장사를 해서 버는 돈으로는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모든 게 뉴타운 지정 이후 전셋값까지 덩달아 뛰면서 빚어진 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 철거가 진행되면 지금 사는 집을 떠나야 하는데, 지금 가진 돈으로 어디로 갈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했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뉴타운에 대한 기대감이 다른 것이다.

수색6구역의 집값 변화 추이를 보면 양씨의 사정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사업 초기인 2003년 이 지역 내 Y빌라 한 가구(대지 지분 8평)의 집값은 4500만원. 하지만 현재 시세는 약 6배인 2억4000만원에 이른다. 대지 3.3m2당 3000만원꼴이다. 하지만 이런 집들에 사는 원주민들은 본격적인 사업 시행 전에 대부분 집을 팔고 떠난다. 30평형(99.18m2)대 조합 아파트를 분양받을 경우 분양가가 5억원이 넘어 3억원가량이 더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이를 마련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입주 이전까지 손바꿈이 일어나 대부분 외지인들 차지가 되는 것이다. 외지인들은 시세차익을 노리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원주민들이 오른 집값에 집을 팔고 간다고 해도 실제로는 크게 득볼 게 없다. 서울시내 웬만한 지역의 집값이 다 올랐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집을 사도 남는 게 거의 없다. 오히려 집값을 맞추기 위해 더 외곽으로 밀려가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수색 토박이인 박모(53)씨도 “결국 뉴타운으로 집값이 올라도 정작 득 보는 사람은 주로 돈 많은 외지인들뿐”이라고 푸념했다.

강북 집값 불안의 원인

수색뉴타운 사례에서 보듯 뉴타운 사업은 지정된다는 소문만 돌아도 대상 지역 집값이 껑충 뛴다. 지정 단계뿐만 아니라 뉴타운 사업의 행정 및 사업 절차가 하나씩 진척될 때마다 계단식으로 집값이 뛴다. 집값이 뛰면 사업추진조합의 사업비 부담이 늘고, 사업분담금을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은 일정한 시점에 집을 내놓고 외곽으로 밀려가게 마련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길음뉴타운 사업의 경우 원주민의 재정착률이 17%선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열악한 주거지역의 주거환경 개선을 사업 목표로 내세웠지만, 정작 원주민은 그 혜택을 거의 못 본다는 얘기. ‘외지인과 투기꾼들을 위한 뉴타운’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재개발 재건축과 뉴타운 사업이 중대형 평수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소형 주택이 크게 줄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시정연)이 2007년말 펴낸 ‘저소득층 주거안정을 위한 저가 소형주택 확보방안’에 따르면 중대형 평수 위주의 아파트 비중이 몇 년 새 크게 늘었다. 2002년의 경우 연립 및 다세대 주택이 전체 서울지역 주택 비중의 64.6%를 차지했으나, 2006년에는 21.3%로 대폭 줄었다. 반면 아파트는 2002년 32.4%를 차지했으나, 2006년에는 76.5%나 됐다.

이런 추이는 서울시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강북에서만 5만호가량의 소형 주택이 철거된 반면 신축된 소형 주택은 1만4000여 호에 불과하다. 최근 노원구와 도봉구, 강북구 등의 집값 상승 배경에는 이와 같은 소형 주택의 수급 불균형이 자리 잡고 있다. 강북 소형 주택의 품귀현상이 소형 평형 위주의 집값 상승을 유발했고, 투기세력이 가세하면서 집값 상승이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형 주택 철거로 인한 집값 상승효과가 인근 지역까지 파급된다는 점이다. 은평구의 경우 은평뉴타운, 수색뉴타운, 증산뉴타운, 가재울뉴타운 등의 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면서 이들 사업지역의 이주 수요로 인근 지역 집값까지 크게 오르고 있다. 은평구 구산동, 신사동이나 응암동 등 뉴타운 대상지가 아닌 인근 지역도 2~3년 사이 집값이 두 배가량 뛰었다. 응암동 S공인중개사 정모씨는 “인근 뉴타운 대상지역에서 밀려나오는 사람들이 응암동 주변으로 옮겨오면서 이곳의 집값과 전세 시세도 크게 올랐다”며 “뉴타운 사업이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집값이 오르고 서민들이 갈 곳이 없어 부작용이 크다”고 말했다. ‘강북 3구’의 집값 상승에만 그치지 않고, 의정부 동두천 양주 등 인접 경기도 지역까지 번져간 것도 이 같은 연쇄 파급효과 때문이다.

서민주택 대란 우려

이런 상황은 향후 몇 년 동안 강북 집값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뉴타운 지구 내에서 철거된 주택이 2003년엔 296가구였으나 지난해에는 7040가구로 늘었다. 2007년말부터 시범 및 2차 뉴타운 사업이 가시화하면서 대규모로 이뤄지고 있는 탓이다. 올해에는 미아, 왕십리, 은평, 가재울, 아현뉴타운 등이 철거에 들어가 이주 가구 수는 더 큰 폭으로 늘어날 전망. 또 3차 뉴타운 지역의 철거가 본격화할 2010년경에는 전세난이 한층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서울시 주택국이 작성한 ‘주택 유형별 변화전망’ 자료에 따르면 뉴타운과 재개발 재건축 등으로 2012년까지 서민들의 보금자리인 단독 다가구 주택의 40%가량이 사라질 것으로 추정된다.

뉴타운 사업의 동시다발적 진행으로 인한 주거 불안은 뉴타운 사업 추진 초기부터 예견됐다. 대단위 개발사업인 뉴타운을 한꺼번에 무더기로 지정했기에 동시다발적 주택 철거 및 이주 수요 발생은 불 보듯했다. 서울시는 그 대책으로 이명박 시장 시절부터 뉴타운 지역 내 사업지구별 단계적 철거를 추진했다. 하지만 ‘우리부터 먼저 해달라’는 민원 때문에 결국 큰 시차 없이 진행됐다. 뉴타운 지역을 동시에 지정한 이상 지구별로,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시정연의 장영희 선임연구원이나 세종대 변창흠 교수 등 관련 전문가들과 경실련 등 시민단체, 심지어 서울시 일부 간부들이 여러 차례 이 문제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명박 시장 시절 이 같은 우려는 사실상 묵살됐다. 이 대통령은 뉴타운 사업의 잠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서울시 간부들을 관련 회의에서 배제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시장 재임 시절 뒷일은 생각지 않고 무리하게 뉴타운 사업을 밀어붙였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이유다.

뉴타운은 주거유형 다양화 측면에서도 큰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서울시 주택국 자료에 따르면 단독 및 다가구 주택이 서울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2005)에서 22% (2012)로 급감한다. 반대로 아파트 비중은 2012년까지 전체 주거형태의 78%로 올라가게 된다. 뉴타운과 재개발·재건축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성 및 투자 수익 확보에 유리한 아파트 일변도의 주택 공급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지금도 북한산에 올라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 곳곳이 아파트 숲으로 뒤덮여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2020년경 서울의 풍경은 어떻게 변할까. 아마 서울시내에서 아파트 외에 다른 주거 형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나마 서울시가 일부 뉴타운 등에서 타운하우스와 테라스형 주택 등을 시범적으로 도입, 주택 유형 다양화에 시동을 걸고 있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무리한 추가 지정 요구

이 같은 뉴타운 사업의 현실을 이해한 상태에서 다시 최근 불거진 뉴타운 사업 논란을 되짚어보자. 우선 한나라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4차 뉴타운 추가 지정 요구는 현재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요구다. 치밀한 도시계획적 판단보다는 정치적 논리에 따라 기존 1~3차 뉴타운이 무더기로 지정된 탓에 동시다발적 이주 수요가 집값 불안을 키우고 있다. 더구나 서민들의 주거난은 매우 심각한 상태다. 기존 뉴타운 사업지역의 철거 및 이주 수요만으로도 이런 상황이 5~6년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런 상태에서 추가로 뉴타운을 지정할 경우 당장 투기심리를 더 키울 뿐만 아니라 소형주택의 수급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켜 주거안정을 해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무더기 지정에 따라 뉴타운 사업도 충분한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2005년 지정된 3차 뉴타운 11곳 중 6곳에서 아직 사업계획조차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2차 뉴타운 사업 대상지 가운데 관리처분계획인가(뉴타운 사업시행 과정에서 사업구역의 이주 및 철거를 서울시가 승인하는 단계)를 받은 비율이 10%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뉴타운 추가 지정을 요구하는 의원들도 나름대로 논리를 펴고 있다.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서라도 공급을 늘리기 위한 뉴타운은 해야 한다”(정몽준 의원)거나 “뉴타운은 원래 주거환경 개선을 통해 집값을 올리기 위한 사업”이라는 주장(홍준표 의원) 등 다양한 논리가 나온다.

홍준표 의원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개발을 하면 부동산 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강남은 규제하더라도 강북 부동산 값은 좀 더 올려 키를 맞춰야 한다.’ 오랜 집값 상승기 동안 소외돼온 일부 강북 주민들 처지에서 들으면 반가운 얘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전반적인 경제·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지역 주민의 ‘재산증식 욕구’만 지나치게 의식한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뉴타운 사업은 시민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지 집값을 올려주기 위한 사업이 아니다. 집값을 올려 시민들의 불로소득을 늘리는 것이 공공정책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동안 개발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온 강북지역을 집중적으로 개발한 결과 이 지역의 집값이 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특정 지역의 집값을 올리기 위해 뉴타운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서울시와 같은 행정기관이 할 수 없는 일이다. 홍 의원의 논리대로라면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집 없는 서민의 박탈감은 어떻게 보상할 수 있겠는가.

시장경제 뒤흔드는 발상

강북 집값이 강남 집값에 비해 떨어져 있으니 이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은 시장 기능을 깡그리 무시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홍 의원은 ‘강남 집값은 충분히 올랐으니 이제 그만 오르도록 꽁꽁 묶자’는 요지의 말도 했다. 이 주장도 마찬가지다. 어제는 강북 주민이 소외됐으니 오늘은 강남 주민들이 차별을 받으라고 할 수 있을까. 시민의 재산 가치를 정책사업을 통해 인위적으로 재조정하겠다는 것은 시장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발상이다.

빈곤층에 대한 소득 재분배는 공동체적 연대감과 사회복지 증진 측면에서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제도화해 있다. 하지만 특정 계층이 아닌, 특정 지역에 따라 부의 편재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특정 지역에 대한 특혜 또는 차별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길이 없다. 더구나 원주민 재정착률이 20%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뉴타운 사업을 통한 개발이익은 대부분 돈 많은 외지인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홍 의원은 서울시가 뉴타운 사업을 확대하지 않는다면 뉴타운 지정권을 국토해양부 장관에게 넘기는 입법안을 마련하겠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유정현 당선자도 거들고 나섰다. 이는 중앙의 업무를 지방으로 이양하려는 시대적 추세에 역행하는 주장이다. 뉴타운 사업 추진 과정에 거쳐야 하는 조합설립추진위원회 구성과 조합설립인가 등은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주민 간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한 사업이다. 중앙으로 권한을 넘길 경우 지역의 현장 사정을 잘 모르는 중앙정부가 지자체보다 더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오히려 관련 절차가 복잡해지는 데 따른 사업 지연 등으로 주민들의 민원만 극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정몽준 의원은 “집값이든, 물건값이든 오르면 해결 방법은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뉴타운을 안 한다면 직무유기”라고 했다.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려면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는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장기적이고 총량적인 측면에서 볼 때 수급 구조가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은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상식이다.

그러나 투기 심리가 한껏 부풀어 오른 지금의 부동산시장 문제를 중학교 수준의 경제학만으로 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택은 공장에서 버튼만 누르면 바로바로 찍어낼 수 있는 통조림이 아니다. 주택이라는 재화는 공간적, 환경적으로 공급이 극도로 제약된다. 서울 강남에 집이 부족하다고 해서 도시 기반시설의 부하를 넘어 강남 아파트를 50, 60층씩 마구잡이로 빽빽이 지어댈 순 없다. 또 지방에 미분양 물량이 넘친다고 해서 강남으로 갖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아파트의 경우 시공기간만 2~3년씩 걸린다. 지방에 넘쳐나는 미분양 물량도 대부분 최근 2~3년 안에 분양이 공고된 물건들이다. 반면 몇 년 전까지 청약대란이 일었던 수도권의 몇몇 신도시 아파트들에는 지금 불 꺼진 집이 수두룩하다.

반면 수요는 어떤가. 투기 심리가 팽배할 때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게 수요다. 최근 집값이 들썩이는 강북의 경우에도 강남 등 타 지역 주민들이 거래한 물건이 태반이라는 언론 보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투기 수요를 막지 않고 국지적으로 물량공급 계획을 세운다고 당장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신도시를 건설해 주택공급물량을 늘리겠다고 발표할 때마다 왜 집값이 더 뛰었는지를 생각해보라.

수요의 함정

서울시의 주택보급률은 2006년 현재 93% 정도다.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아직 100%를 넘지 않았다. 따라서 꾸준히 질서정연하게 공급을 계속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주택정책을 심도 있게 연구해온 김광수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재개발, 재건축 수요 등을 감안할 때 미국, 일본 등 선진국도 주택 보급률이 110~120%에 이를 때까지는 꾸준히 주택공급을 늘렸다고 한다. 하지만 공급한 주택이 실수요자가 아닌 투자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나 기획부동산과 같은 투기세력에게 돌아가 집값 거품을 키운다면 서민들의 주거 상황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 뉴타운 지역에 몰려드는 수요는 실수요보다는 투자수요 또는 투기수요가 대부분이라는 게 현지 부동산중개업소들의 얘기다.

더구나 뉴타운 사업은 주택 공급이 아닌 주거 공급 확대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효과가 부정적인 사업이다. 뉴타운 사업은 신도시 개발과 같이 새로 주택을 공급하는 사업이 아니라 기반시설이 부족하거나 노후 주택이 밀집한 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소유권을 기준으로 한 주택공급 호수는 상당히 늘어나지만 실제 수용할 수 있는 가구수는 종전에 비해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뉴타운 사업 과정에서 서민들이 주로 사는 다가구 주택과 소형 주택이 줄고 중대형 평수 위주의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신길뉴타운과 휘경-이문 뉴타운 지역의 경우 주택 호수는 4만5803호에서 7만5428호로 늘어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지역에 거주하게 될 가구수는 8만5765가구에서 7만5428가구로 12%가량 줄어든다. 이는 뉴타운 지역에서 줄어든 가구수를 다른 지역에 채워넣어야 한다는 의미다. 뉴타운 두 곳만 해도 이런데, 이를 전체 35개 뉴타운 지역으로 확대해보면 이 같은 주택 수요 창출 효과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짐작할 만하다. 뉴타운 사업은 공급을 늘리기보다는 오히려 주택 및 전세 수요만 계속 늘리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정몽준 의원의 수급논리에 따른다면 뉴타운은 추가 지정을 할 게 아니라 기존 사업도 취소해야 할 판이다.

이처럼 뉴타운 추가 지정을 요구하는 정치인들의 주장에는 허점이 많다. 많은 정치인이 뉴타운 사업을 단순히 주택공급 확대나 지역개발 촉진사업 정도로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주택이 사라지고, 어떤 사람들이 쫓겨나며,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피해를 보는지엔 관심이 없는 듯하다.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일 수도 있다.

‘뉴타운맨더링’은 계속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쉽게 굽힐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들은 이미 헛공약 논란에 휘말리면서 네티즌들에게 ‘타운돌이’(탄핵 정국에서 국회에 손쉽게 입성한 17대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탄돌이’라고 부른 것에 빗대 18대 총선에서 뉴타운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한나라당 당선자들을 지칭)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까지 얻었다. 뉴타운 공약을 관철시키지 못할 경우 지역 민심의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더구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뉴타운 공약을 관철시켜야 자신들의 정치생명 연장에 유리하다. 이번 총선에서 드러났듯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한 곳의 유권자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적, 친한나라당 성향을 띤다. 그러니 서민층 주거지인 지역구를 아파트 단지 위주의 중산층 주거지로 바꿀 경우 한나라당 의원들이 득을 볼 가능성이 높다. 특정 후보나 정당에 우호적인 성향의 유권자들이 집중되도록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을 ‘게리맨더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에서는 지역감정 때문에 같은 행정구역 내 계층별 지지성향 분화가 심하지 않아 게리맨더링의 유혹은 비교적 작았다. 하지만 지역구는 그대로 둔 채 대규모 뉴타운 사업 등으로 지역구민들을 ‘물갈이’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를 ‘아파트맨더링’이나 ‘뉴타운맨더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의 지난 총선 결과는 이런 경향이 앞으로 더욱 공고해질 것임을 보여줬다. 따라서 ‘뉴타운맨더링’을 염두에 둔 한나라당 당선자들의 뉴타운 추가 지정 공세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추세로 뉴타운 사업이 진행돼 1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이 정권의 부침에 따라 진폭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울 대부분의 지역구는 한나라당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역구로 변모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뉴타운 사업을 처음 시작한 이 대통령이 이런 것까지 염두에 뒀을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랬다면 그는 한나라당을 위해 정말 ‘지속가능한 기여’를 한 셈이다.

사람과 공동체 중심의 뉴타운을

뉴타운 사업은 이 같은 정치논리에만 맡겨두기에는 그 사회, 경제적 파급효과가 너무나 큰 사업이다. 이제 기존 뉴타운 사업의 실태와 문제점을 면밀히 살피고 문제점을 보완하는 작업을 펼쳐야 할 시점이 됐다.

향후 뉴타운 사업은 ‘강북을 강남만큼 끌어올린다’는 균형발전 논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원주민이나 투자자들의 집값 상승 욕망에 기댄 아파트 중심의 획일적인 주택 공급, 기존 도시의 흔적을 송두리째 없애는 도시 설계, 개별 조합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세입자 주거 대책, 주민 사이 반목과 갈등을 조장하는 사업 방식, 상당수 원주민을 쫓아내는 비인간적인 뉴타운 개발은 지양해야 한다.

그보다는 주민들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서민 주거 안정을 확보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뉴타운 추가 지정을 보류하고, 이미 뉴타운으로 지정돼 개발이 추진 중인 곳도 단계적, 순차적 개발로 사업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또 뉴타운 지역에 공급되는 주택 가운데 소형 및 임대 주택 공급 비율을 높이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는 별도로 다가구 매입 임대주택 사업을 확대하고, 공공 임대주택 및 장기전세 공급 확대 등을 통해 뉴타운 개발로 쫓겨난 서민들이 안정적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뉴타운 사업은 향후 10여 년 동안 서울의 모습을 확 바꿀 대역사다. 지금처럼 개발욕망과 정치논리에 물들어 집값 폭등과 낮은 재정착률로 대변되는 ‘뉴타운의 비극’을 되풀이한다면 서울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사람과 공동체가 중심이 된 뉴타운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by 선대인 2008. 9. 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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