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이라크 전문가 단 한명도 없는 나라

김선일씨 피랍 및 사망사건을 둘러싼 정부의 대응 과정은 "국익을 우선한다"는 거창한 외교적 명분과는 사뭇 동떨어진 것이어서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그간 대(對)중국, 대(對)일본 외교 등에서 노출됐던 한국의 어설픈 외교력은 이번 자국민 피랍 및 살해사건에서 초라한 현주소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후약방문'일 수 밖에 없지만 '두번의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태에서 뼈저린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미디어다음은 국내 중동전문가 다섯 명에게 이번 사건의 발생 원인과 문제점, 향후 보완책 등을 물어보았다.

전문가들은 정권 이양기에 권력투쟁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과격 테러단체에 김씨가 희생당한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현지에서 민-관 연락체계를 확고히 하지 않았던 점 등 사전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았던 것이 화를 키웠다고 지적했다.이들은 우리 정부의 정보력 부재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관련 인력을 체계적으로 키우지 않아 진정한 이라크 전문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국내에 사실상 없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었다. 이 때문에 현지 사정을 모르고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다 보니 제대로 된 외교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진단이다. 특히 현지 종교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지역 내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작업이 절실하다고 말한다.정부가 외교적 수사로만 '재건과 평화'를 앵무새처럼 되뇔 것이 아니라 이라크 현지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이 같은 활동을 효과적으로 홍보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라크 등 중동지역에는 알 자지라 같은 위성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가구가 많지 않으므로 공중파와 지역 케이블 방송 등을 활용한 홍보작업을 펼쳐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다음은 이들 전문가들의 의견 요약.
 
"일본 이라크 대사관에만 정보요원 200명…우리는 이라크 전문가 단 한명도 없어"
"중동 지역 나가 있는 1만명 안전에 신경 쓰야"






24일 국회 본회의에 출석, 긴급 현안 질문에 답하고 있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할 시점이다.[사진=연합뉴스]

홍성민 한국외대 중동경제연구소장

가장 큰 문제는 정보력 부족이다. 일본 경우 이라크 대사관에만 200명정도의 정보 요원이 나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인력이 없어 김씨 사건과 관련해서도 접선이나 접근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속기만 했다. 정부 차원에서 정보를 수집해줘야 한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회의만 했지 결과가 없다. 김씨 장례 절차만 논의했나. 자체 분석 자료가 없었던 것 같다. 외교부나 청와대나 국방부 모두 외신이나 기다리는 꼴이었다. 우리 국가 전체의 정보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현지에 보내 육성해야 한다. 한국에 이라크 전문가는 한 명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나도 이라크와 관련해 글도 좀 쓰고 인터뷰도 하고 전문가로 분류 되지만 솔직히 부끄럽다. 현지 한 번 방문하고 책 보고 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그곳에서 몇 십년씩 살면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다 보니 현지 사정을 너무 몰랐다. 이라크는 결국 이라크인의 것이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종파를 초월해 뭉친다. 그걸 너무 무시하고 우리는 그냥 이슬람이라고 얘기한다. 서희-제마부대가 그곳에서 한 일이 뭐냐. 한국인인 나도 모르는데 그 사람들이이 어떻게 아나. '평화재건'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으면 뭘 했는지 보여줘야지.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레이트 등 각 중동국가에 나가 있는 교민 수가 5000명정도 되고 장기 체류나 출장자를 합치면 1만명 가량 될 것이다. 이 사람들이 우리 경제에 아주 중요한 사람들이다. 우리 나라의 원유 수급 문제를 책임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위한 대책이 없다. 정부가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중동에서 우리 기업가들이 어깨 펴고 사업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국민의 감성에만 기대고 표만 의식하는 것 같다. 문제점을 꼼꼼이 따져서 장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말로는 하고 실천은 안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에도 중동에 정보망을 구축하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그게 전혀 가동이 안됐다. 파병 논리로 '이라크 특수'를 외쳤는데 실제로는 아무 결과도 없다.

지금 시점에서 철수냐, 파병이냐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는 건 무익하다고 본다. 생각 같아서는 파견한 부대를 다 데리고 오고 싶지만 무책임한 거다. 부대를 다시 불러올 경우 미국이 가할 경제적 압력이 만만치 않을 거다. 일단 파병한 이상 미국과 협상을 통해 실익을 챙기는 과정을 거치더라도 파병문제를 재론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언론에도 잘못된 정보 너무나 많아…소수 전문가에 의존한 정보로는 한계 있어"


전완경 부산외대 아랍어과 교수(한국중동학회 회장)

이번 사건이 왜 일어났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굉장히 어렵다. 한가지 요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원인은 아랍 사람들 특히 이라크 사람들은 한국이 미국의 협조자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 같다.이번 사건을 통해 한국이 파병 결정을 미루거나 철회하게 만들려고 압력을 행사하려 한 것이다.정부대응의 문제점은 이번 사태나 중동지역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전체적인 외교와 관련된 문제를 노출시켰다. 즉 일본이나 선진국처럼 지역 전문가가 없고, 각 지역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할 수 있는 체계화된 정보 시스템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다.평상시에는 특별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항상 이번 같은 큰 사건이 있을 때만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을 붙잡고 조언을 듣고 잘못된 대처를 하고 있다. 이는 정부뿐 아니라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보도들을 보면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다. 정부나 언론이나 모두 지역 전문가 몇 명에게만 의존해 정보를 얻는 것은 한계가 있다.미래를 내다보며 지역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 또 아랍권 국가에 한국을 계속 홍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아랍의 친구가 될 수 있으며 평화를 지키고자 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또 이번 협상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정보를 축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중동의 문화나 언어들을 잘 알고 그들과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냄비처럼 이번 사건으로 한번 떠들고 나서 잊어버리지 말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민관 협력 체제 없었던 점 아쉬워"






김선일씨 사망 소식을 들은 뒤 울부짖는 동생 정숙씨. 이들의 아픔을 치유할 길은 뭘까.[사진=동아일보]

이영태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이번 사태의 표면적인 이유는 한국의 이라크 파병이다. 파병이 없었으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이 원하는 실질적인 것은 파병 철회가 아니다. 그들은 한 사람의 무고한 시민을 해치는 게 파병을 막는 요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정권 이양기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권력투쟁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수단일 뿐이다. 고 김선일씨는 이러한 정치적인 이유의 희생자이다. 테러리스트 집단은 이와 같은 행동을 통해 선전 효과의 극대화를 바란 것이다. 집단의 이익을 위한 추악한 인권 위해일 뿐이다.

정부의 대응은 주어진 역량 안에서 할만큼 한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을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민간 채널 강화를 통한 민-관 공조체제가 구축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이 정부에 알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 한 것은 이런 채널이 잘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파병은 오랜 시간을 거쳐 협의를 통해 결정된 정책이다. 이번과 같은 희생이 있을 것이라는 것도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다. 자이툰 부대원 3000명 중 60~70명이 내가 직접 가르친 제자들이다. 제자들을 파병 부대에 섞어 놓고 있는 선생 입장에선 반대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지성인으로서 국제적 역학 관계나 우리나라의 사정과 같은 전체적인 틀을 보면 파병은 불가피한 것이라 생각한다.

"정치지도자, 종교지도자와 네트워크 구축해야"


장세원 명지대 아랍학과 교수

이 사건은 이라크 정권이양이 가까워 지면서 이슬람 세력간의 권력 선점을 위한 것이다. 무장세력 지도자의 대부분이 외국인 요르단이나 팔레스타인 출신이다. 이들은 이라크 내에서 반미 감정을 부활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두번째 이유는 한국의 추가 파병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한국만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미국을 목표로 한 것이다. 이라크, 더 나아가 아랍땅에서 미군을 축출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세계의 이슬람화에 있다.이라크전이 발발하기 전인 2003년 1월에 이라크에 다녀왔다. 당시 한국에 대한 이라크인의 인식은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해서도 매우 좋았다. 우리의 제품은 현지에서 인기가 좋았고 월드컵을 통해서 한국이 이라크에 잘 알려져 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배신감이 크다. 하지만 일부 정치적 테러리스트의 과격한 행동 때문에 반 이슬람, 반 이라크 같은 감정을 표출해서는 안 된다.고 김선일 씨 관련 동영상을 보면 그는 다른 미국인 희생자들과 같은 오렌지색 옷을 입고 있다. 이는 테러리스트들이 한국과 미국을 동일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화와 재건'을 위해 이라크를 돕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알 자지라나 알 아라비아 같은 아랍권에서 영향력 있는 매체에 홍보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은 위성방송이기 때문에 수신기가 없으면 시청할 수 없다. 현재 이라크의 많은 가정에 수신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현지 사정을 고려하여 이라크 내의 통신, 언론 매체를 활용해 일반인들에게 많은 홍보를 해야 한다.이슬람 사람들의 특성상 그들은 지도자의 의견을 따르게 되어있다. 이 때문에 지도자와의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한국정부가 실패한 부분이다. 아랍이나 이슬람 전문가를 양성하고 이들을 통해 정치지도자나 울라마(이슬람 종교지도자)와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이번 사태가 발생한 뒤 협상단이 구성됐지만 누구를 통해 테러조직과 접촉해야 할지 우왕좌왕한 것은 이러한 네트워크가 형성이 안 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 미국 주도 전쟁의 연대세력 돼선 안돼"

홍미정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

가장 큰 원인은 우리 나라가 미국에 동조해서 파병을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번 이라크전쟁을 기독교 대 이슬람교간의 종교적 대립 구도로 보는데 이는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은 종교적 동기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원유 확보 등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시작된 것 아니냐.특히 김선일씨가 피랍된 상황에서 정부가 파병 방침을 재확인한 건 현지 분위기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돌아가신 분에게는 송구스러운 얘기지만 그 분이 미군납업체 직원이었기에 아랍사람들 입장에서는 한국인이 현지에서 하는 일의 상징처럼 비쳐질 수 있다. 미국의 하수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나. 나만 해도 7월초에 팔레스타인의 국제문제연구소에 가기로 돼 있었으나 그쪽에서 요즘 아랍인들이 한국인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만연해 있으니 다음에 오라고 했다. 한국군의 파병 사실이 보도된 뒤 아랍인들이 한국에 대해 매우 기분 나빠하고 있다고 한다. 그 사람들은 우리를 침략자의 한 세력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는 도와준다, 재건이다 하는데 현지인들이 언제 도와달라고 했나. 현지인들이 도움 필요없다고 하는데 도움 준다는 게 말이 되나.정부가 미국과의 관계도 있어서 처신하기 힘들겠지만 스페인처럼 철군한 전례도 있으니 철회를 고려해야 한다. 노대통령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번 단체를 테러단체로 규정함으로써 미국 부시대통령이 주창하는 '반테러전쟁'의 연대세력이 됐다.
by 선대인 2008. 9. 4. 1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