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초반 행보가 눈부시다. 소통과 치유의 행보는 섬세하고 따스하며, 적폐 청산과 개혁의 행보는 절묘하면서도 단호하다. 특히 지금까지 발표된 인사를 보면 검찰개혁과 재벌개혁에 대해 상당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다만, 부동산정책에서 좀 더 뚜렷한 개혁방안이 발표되면 좋겠다. 물론 워낙 임기 초반이고 할 일이 산더미라는 걸 안다. 하지만 부동산문제 역시 온 국민의 관심사이고, 인식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한 문제다. 이와 관련해 여기에선 한 가지만 제언하고 싶다. 


나는 부동산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단 하나의 정책을 고르라고 하면 후분양제를 꼽겠다. 대다수 사람들이 살면서 사게 되는 가장 비싼 물건이 주택이다. 그런데 이런 주택을 건설업체들이 만든 팸플릿이나 실물과 다른 견본주택만 보고 사게 하는 제도가 선분양제다. 선분양제 하에서 건설업체들은 나중에는 어떻게 될 값에라도 사람들을 선동해 무리하게 분양 대열에 서게 만든다. 입주 후 집값이 떨어져도 건설업체들은 책임지지 않는다. 3~5년의 거치기간 동안 이자만 내게 하는 주택담보대출이 만연한 것도 선분양제 탓이 크다. 


선분양제에서는 건설업체에 비해 주택소비자의 권리가 한없이 취약해지는 것도 큰 문제다. 돈부터 받고 집을 파는 꼴이니 품질시공은 뒷전이다. 주먹으로 치면 움푹 들어가는 스티로폼 벽체로 시공되는 사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택소비자들이 일일이 확인할 수 없으니 산업용 폐기물까지 들어간 쓰레기 시멘트 사용이 아파트 시공에서 일반적이다. 기둥과 보만 더 설치하면 해결할 수 있는 층간소음 문제도 선분양제 하에서는 해결이 요원하다. 어차피 팔리고 난 상태에서 짓는 주택에 층간소음 줄이겠다고 비용을 더 투입할 리 만무하다. 이런 식으로 선분양제 하에서는 투기적 가수요로 주택경기의 진폭이 커지고, 위험한 구조의 주택대출은  늘어나기 쉬우며, 주택소비자는 홀대받고, 품질 경쟁은 어려워진다. 


세계적으로 이런 식으로 대부분의 주택을 공급하는 나라는 한국 말고 없는 것으로 안다. 수십 년 전처럼 급속한 도시화와 수도권 집중이 빠르게 일어나는데 주택을 공급할 건설업계의 자금력이 취약하다면 모를까. 실질적인 주택 수요에 비해 건설업계가 비대해질 만큼 비대해진 상황에서도 아직 선분양제를 실시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지난 몇 년간 박근혜정부에서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를 동원해 만든 ‘분양 호황’으로 상당수 건설업체들은 부채를 털었다. 건설업체들의 부채를 가계부채로 이전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후분양제를 실시하지 못한다면 언제 실시할 수 있겠는가. 


건설업계는 후분양제를 실시하면 자금력이 취약한 건설업체들이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금력이 취약한 건설업체들도 최대한 공급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보증 여력을 확대해주면 된다. 그리고 그들에겐 안타깝지만, 부실한 업체가 퇴출되는 것은 정상적 시장에서라면 이미 일어났을 일일 뿐이다. 주택공급이 줄어 집값이 뛸 거라는 엄포도 건설업계는 내놓는다. 일시적으로는 몰라도 오히려 지나친 공급 과부족이 되풀이되는 흐름이 약화돼 집값의 진폭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선분양제 하에서 분양권 차익을 노린 투기적 가수요가 들끓어 집값을 밀어올린 효과만 할까. 건설업체들 주장이 맞다고 쳐도 지난 몇 년간 사상 최대 분양 물량이 쏟아져 올해 하반기 이후 ‘공급 폭탄’이 예상되는 지금이야말로 후분양 이행을 위한 적기다. 


어떤 핑계를 대도 이제 후분양제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이는 기득권세력이 흔히 말하는 ‘반시장적 조치’와도 거리가 말다. 오히려 후분양제는 다른 모든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완성품을 사게 한다는 점에서 시장원리에 더 맞다. 건설업계가 ‘갑질’하게 하는 선분양제냐, 대다수 국민들이 편한 후분양제냐를 선택하는 문제다. 


후분양제는 분양가 자율화와 함께 1997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했던 과제다. 그러다 외환위기 직후 건설업계의 저항으로 선분양제는 유지되고 분양가만 자율화돼 부동산 광풍을 불렀다. 이후 출범한 노무현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후분양제 도입을 야심차게 공표해 큰 기대감을 모았다. 하지만 구체적 실행과정에서 당시 건설교통부의 사보타주 행태로 후분양제 도입은 지지부진해졌다. 그리고 이명박정부는 2008년 경제위기를 핑계로 후분양제를 사실상 폐지했다. 


선분양제가 처음 도입된 1977년 이후 40년, 정부 차원에서 후분양제 전환 의사를 밝힌 지도 20년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시대착오적 선분양제로 온 국민들이 시달리고 있다. 이런 선분양제는 분명히 비정상이다. 주택시장의 가장 큰 적폐다. 후분양제 전환은 온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개혁이다. 그리고 노무현정부 미완의 과제다. 노무현정부의 계승자인 문재인정부가 후분양제만큼은 임기 안에 꼭 안착시켜주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염원한다.  



 <미래의 기회는 어디있는가 2017> 특강(7월 8, 9일) 얼리버드 모집중. 데니스홍, 송길영, 이민화, 강정수 등 각 분야 최고 전문가 여덟 명의 명강연.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의 특강!

http://www.sdinomics.com/data/notice/8285

by 선대인 2017. 5. 25. 07:36